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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리브르빌
- 인구 : 790,000명
- 면적 : 65.42㎢
리브르빌(프랑스어: Libreville)은 가봉의 수도이자 에스튀에르 주의 주도이다. 1849년 해방 노예 출신 인사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가봉 강 어귀에 세워졌으며, 기니 만으로 빠져나가는 항만에 위치해 있다.
역사
1839년 프랑스가 현지역을 점령하기 오래전부터 음퐁웨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1846년 판매를 위하여 노예를 싣던 중이던 브라질의 배 렐리지아 호가 로앙고 근처에서 프랑스 해군에게 붙잡혔다. 그 배에 승선했던 46명의 노예들은 자유가 되었고 1848년 프랑스어로 "자유의 마을"을 뜻하는 리브르빌을 설립했다. 1934년에서 1956년까지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주요한 항구였고 1940년에 가봉 전투의 중심이되는 초점이었다. 즉, 리브르빌은 노예의 인권 존중과 식민주의의 요구의 경계면에 서 있는 도시였던 것이다.
리브르빌은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을 모방하여 명명되었고 교역 장소(trading post)로서 천천히 성장했으며 1960년 독립할 당시 31,000명의 인구로 작은 행정 중심지였다. 1930년 서아프리카 은행이 최초로 은행 지점을 열었었다. 독립 이후,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으며 현재 국가 인구의 거의 절반이 산다.
조형물 ‘자유의 석상’
리브르빌 해변가에는 ‘자유의 도시’ 리브르빌(Libreville)을 상징하는 조형물인 ‘자유의 석상’(La Stèle de la liberté)이 있다. 이 조형물은 1849년에 세네갈에서 브라질로 팔려가다 프랑스 해군에 의해 해방되어 리브르빌에 정착한 272명의 흑인 노예들을 기념하기 위해 2007년에 세워졌다.
교류현황
- '22. 10. 10.
- 대전시-리브르빌시 우호협력 MOU 체결
대전광역시가 창작한 "우호도시 리브르빌" 저작물은 "공공누리 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 담당부서 : 국제담당관 (202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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