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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신라시대의대전

한반도에 고조선이 성립되고 있을 때, 한강 이남에는 진(辰)이라고 불리는 부족 연맹체 가 기원전 4∼3세기경에 있었다. 그후, 진은 철기문화의 이주민을 받아들이면서 마한, 진한, 변한의 세 연맹체로 발전하였다. 이때 대전지방은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다. 마한은 54개의 부족국가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대전지방에 존재한 부족국가로는 신흔국이 자리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족국가는 모두 지금의 유성과 진잠 사이의 어느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 시기 대전지방의 역사는 앞으로의 연구에 기대된다. 마한이 백제에 정복되면서 대전지방은 백제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백제는 처음에는 마한의 작은 국가 중의 하나였지만 차차 세력을 키워 그 중심 세력이 되었다. 이어서 여러 세력을 통합하고 안으로 국가 제도를 정비하여 3세기경 고이왕 때에는 고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 4세기경 근초고왕 때에 마한의 남은 세력을 정복하여 완전히 통합하고 남해안까지 그 세력을 뻗쳤다. 이 시기에 대전지방도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이때 대전지방은 백제의 군현으로 우술군(雨述郡)으로, 그 치지는 회덕 지방으로 추정된다.

석기시대의 토기

고구려의 압력을 받아 한강 유역을 빼앗긴 백제는 문주왕 때 수도를 웅진성(공주)으로 옮겨 나라를 정비하고 신라와 동맹하여 고구려에 대 항하였다. 따라서 대전지방은 백제 수도인 웅진의 위성역할을 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동성왕은 탐라국(제주도)을 복속시켰으며, 무령왕은 고구려의 공격에 대항하면서 국력을 길러 백제의 부흥을 꾀하였다 동성왕 20년(498)에 사정성(沙井城, 지금의 중구 사정동)을 쌓고 한솔 비타(毗抒)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백제 관등에 한솔은 16품 가운데 제 5품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 대전지방은 백제의 변경으로 중요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정성은 성왕 때에도 목책을 설치했다.

무녕왕의 뒤를 이은 성왕은 서울을 다시 사비성(부여)으로 옮겨 백제의 중흥을 꾀하였다. 성왕 때 백제는, 신라와 동맹하여 고구려를 쳐서, 잃었던 한강 하류 지역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신라가 그 땅을 빼앗자 성왕은 신라와 싸우다가 관산성(옥천)에서 전사하였다. 대전지방에 금강을 경계로 한 산줄기에 많이 쌓여진 산성들은 대체로 이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 대전지방의 행정구역은 37군 가운데 하나인 우술군에 영속되어 그 밑에 노사지현(奴斯只縣, 지금의 유성지방)과 소비포현(所比浦縣, 지금의 유성구 덕진동)이 있었다. 또한 대전 유성구의 진잠지방은 진현현(眞(貞)峴縣)이 있었는데, 지금 연산지방의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에 예속되어 있었다.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게 사비성이 함락되고 멸망하였다(660). 백제가 망하자, 옛 영토에서는 부흥운동이 줄기차게 일어났다. 옛 백제 지역에서는 복신, 도침, 흑치상지와 왕자 풍이 부흥운동에 앞장 서 한때 그 세력이 대단하였으나 내분이 일어나 실패하였다.

계족산성 전경

백제 부흥 운동은 대전지방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부흥 운동의 초기(660년 7월∼661 년 1월)에 정현(貞峴)에서도 궐기하였다. 이 정현은 바로 진현성으로 구 진잠관내에 속한다. 부흥운동의 제2기(661년 2월∼662년 5월)에는 대전지방에서 웅진도(熊津道)를 차단하는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웅진도는 보은·옥천방면에서 대전·유성을 거쳐 공주에 이르는 신라의 군량 운송로서 중요한 지역이었다. 백제 부흥군이 웅진도를 차단하는 것은 공주에 주둔하고 있는 당군과 신라의 본군을 차단하여 당군을 고립시켜 백제의 부흥을 꾀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백제 부흥군이 내분을 일으키자 당군은 대전지방 부흥군의 거점을 함락하였다. 즉 지라성(질현성), 윤성, 사정, 대산 등 웅진강 동쪽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하고 연이어 진현성(흑석동 산성)과 내사지성(월평동 산성)을 함락하여 대전지방에서 활약한 백제운동은 종식을 고하였다.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지방제도를 개편하였다. 백제시대의 우술군은 비풍군(比豊郡), 그 영현인 노사지현은 유성현, 소비포현은 덕진현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진현현도 진잠현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자료 : 최근묵(시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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