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대흥동에는 종소리가 들린다
- 담당부서 공보관실
- 작성일 2014-01-23
☞ 이 글은 이츠대전TV 블로그 작가단의 글입니다. 대전시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글쓴이 : 조영여 아동문학가

1960년 3월10일 대흥동 성당의 기공식이 열렸다. 당시 들어간 총공사비는 1억 4천만 환이다. 건축 당시 성당 건축물은 규모나 양식면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성당 건축물이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많았던 것과는 다르게 이 성당은 시멘트 벽돌을 사용해 마감을 했다. 큰 성당을 내부에 기둥 하나 없이 건축한 것도 높게 평가를 받았다. 성당설계는 이창근이 했고, 설계도는 로마 교황청까지 보냈다.

성당의 규모도 관심을 모았지만 대흥동 성당의 외벽에는 열두 사도의 부조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 여섯 사도는 이남규 교수의 작품이다. 나머지 여섯 작품은 최종태 교수의 작품이다. 최종태 교수와 이남규 교수는 중학교 미술반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였다. 두 사람은 대학교까지 1년 선후배사이로 인연을 이어갔으며 두명 다 대흥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당시 주임신부였던 오기선 신부가 두 명의 무명작가에서 작품을 의뢰한 것은 상당한 파격이었다. 두 젊은 작가들은 필요한 재료비만 받고 긴 작업을 이어갔다.
젊은 작가에 기대와 지원은 최종태 교수의 작품세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최교수가 성모상을 제작하면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는데, 성모 마리아에게 치마 저고리를 입힌 것이다. 이처럼 낯선 성모상은 신자들의 구설수에 오르고 반대도 많았지만, 오신부는 2미터가 넘는 이 성모상을 성전 제대 오른쪽에 세우고 왼쪽에는 소화 테레사 성녀상을 세웠다. 마찬가지로 2미터가 넘는 성 요셉상은 제단 정면 벽 상단에 세워졌다.(대흥동본당 85년사 인용)

대흥동성당을 성당답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종소리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정오와 저녁 7시에 대흥동 일대에는 맑은 종소리가 울린다. 대흥동 성당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종은 대흥동 성당을 상징하는 소리가 됐다. 경박스럽지 않고 요란하지도 않다.
맑은 종소리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올해 예순일곱의 조정형씨. 성당에서는 세례명인 방지거 아저씨라고 부른다.
방지거 아저씨가 대흥동 성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9년부터다.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은 방지거 아저씨는 아는 신자의 소개로 대흥동 본당 관리직으로 들어왔다. 청소를 하고 본당을 찾는 차량관리를 하고 규모가 큰 성당의 이곳 저곳을 손보는게 그의 주된 업무다. 종지기가 된 것도 그때 부터다. 처음에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씩 종을 쳤지만 아침시간에는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와 점심과 저녁 2번만 치게 됐다. 45년 동안 종을 쳤으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이다.

몇 년 전 중년의 여성이 성당을 찾았다. 대흥동 성당을 다니는 신자는 아니었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성당입구에서 종을 치는 사람을 찾았다. 방지거 아저씨는 그 여성이 낯설었다.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아저씨, 저는 오래 전에 대전여중을 졸업한 학생인데요. 문득 이 곳 앞을 지나다 보니까 종소리가 생각나서 들어왔어요. 저 학교 다닐 때 3년 동안 들었던 종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는데요. 그 종소리를 만들어준 분에게 감사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대흥동성당 바로 옆에 대전여중이 자리하고 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적어도 점심시간 만큼은 그 종소리를 들었다. 어린 여학생에게 그 종소리가 오랫동안 각인된 모양이었다.
또 한 번은 성당 인근에 사는 외국인 한분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성당관계자에게 외국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며칠째 종소리를 듣고 있는데요. 지난주 치던 종소리랑 느낌이 다르던데 종에 무슨 문제가 생긴건가요?”
이 전화는 성당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 것은 종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종지기인 방지거 아저씨가 종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방지거 아저씨는 로마와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났기 때문에 타종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던 것이다. 숙련되지 않은 솜씨로 종을 친 것을 이 외국인이 알아차린 것이었다.

대흥동 성당 종 축성식이 거행된 것은 1963년 3월 10일. 크기가 다른 세계의 종은 모두 프랑스에서 주문한 것이다. 예배당 2층부터 시작되는 백개 가까운 계단을 오르면 성당 꼭대기에 종이 있다. 이 종은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데 간결하고 웅장하고 깊이있는 소리를 낸다.
방지거 아저씨는 주교님이 선물한 시계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종칠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종줄에 매달리듯 당긴다. 그가 주교님에게 처음에 받은 시계는 세이코. 그 다음은 오메가 시계였다고 기억한다, 한동안은 시계를 보고 종을 쳤지만 세월의 흐름 탓에 시계가 고장났고, 그 다음부터는 평화방송의 시보에 맞춰 종을 치고 있다. 그가 친 종소리를 쌓을 수 만 있다면 그 높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랜 세월의 자랑보다는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돌아보기를 바라고 있다.
“내 종소리를 들으면서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면 종을 치는 일도 복음이 되지 않을까요?”

방지거 아저씨에게 자신이 치는 종소리를 듣고 해줬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종소리가 참 곱네요, 이 말이 가장 듣기가 좋아요.”
그는 명동성당의 종소리도 들어보았다. 꿈에 그리던 노트르담 성당의 종도 쳐봤다. 하지만 방지거 아저씨는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만큼 곱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듣기에 거친 데가 없이 맑고 부드럽다는 뜻의 곱다, 아마도 마음의 결이 거칠지 않고 매끄럽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해외순례를 나가거나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항상 종을 쳐온 종지기 인생.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종탑을 계속 오른다.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취재블로거 조영여 아동문학가
원본 콘텐츠 : 대전시인터넷방송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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