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곤달걀 하나라도 우습게 보지 마라!-대전역전 시장에서 만난 곤달걀 할머니
- 담당부서 공보관실
- 작성일 2013-10-04
☞ 이 글은 이츠대전TV 블로그 작가단의 글입니다. 대전시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글쓴이 : 국은정 작가
아무리 구도심이라고는 하지만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들과 저만치 우뚝 솟은 쌍둥이 빌딩(철도기관 공동사옥)을 보고 있자면 대전역 주변은 과거에만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도 여전히 번화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역전 주변을 걷고 있자면 도심의 바쁜 일상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온다. 어디선가 울리는 날카로운 경적소리는 단번에 숨통을 꽉 막기 일쑤다.
이런 도시의 재빠른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시간을 붙잡아 놓은 것처럼 정겹고도 살가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중앙시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 사이 은밀하게 숨어있는 대전역전시장. 처음 그곳에 장이 설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곳을 ‘대전역 깡시장’이라고 불렀단다. 어쩐지 잘 다듬어진 어감의 ‘역전시장’보다 구수한 바닥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깡시장’이라는 말이 훨씬 더 친근하다.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환경을 정비해서 이전보다 단정하고 현대화 된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앙시장과 달리, 이곳은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찾았던 전통재래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점포라고 해도 이렇다 할 모양이 없어 모습은 노점에 더 가깝다. 통로도 넓지 않아서 리어카 한 대가 길을 가려면 장을 보던 사람들은 모두 몸을 피해 주어야 할 정도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익숙한 사람들에겐 그저 불편하고 촌스러운 곳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곳에 진열된 농수산물의 품질상태는 물론 가격을 보면 대형마트에서 팔리는 그것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밭에서 막 따서 얹어 놓은 것처럼 푸르다 못해 반질반질 윤이 난다. 어디서 이렇게 신선하고 물 좋은 것들만 모아 놓을 수 있을까 절로 감탄하게 된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 시절의 시골장터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이곳에선 돈 만원으로도 살 수 있는 것들의 가지 수가 제법 여럿이다. 안다는 사람들만 알고 장보기의 달인들이 애용하는 곳이라 왠지 소문내고 싶지 않은 마음조차 생긴다. 비밀의 정원(?)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이곳이 혹여 누군가의 설익은 머릿속 계산 아래 지금의 모습을 온전히 잃어버린 채 변해버릴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부디 이런 걱정이 노파심이길…….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종일 오락가락하던 11일 오후, 비가 간간히 내리는데도 명절을 앞두고 적지 않은 발길이 찾아와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는 풍경은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그땐 공판장에 사람들도 없고, 이 통로에 장사꾼 하나 없었어. 가끔 사람들이 윷이나 놀았지.”
시장이 처음 생겨날 무렵부터 지금까지 시장 한 구석에 앉아 무려 마흔 해가 넘는 겨울 칼바람을 참아내셨다는 류하자(72세) 할머니는 이곳의 산증인이자 터줏대감이시다. 할머니의 주 종목은 곤달걀과 막걸리 잔술이다. 시장통에서 할머니를 모르면 간첩! 이제는 해외여행객에까지 알려져 찾는 외국인들도 늘었다는 할머니의 자부심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몸을 기어이 이끌고도 매일 같이 이 시장을 지키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추억 속에선 읍내 목욕탕에 다녀오는 날이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뜨거운 곤달걀을 까서 먹었다. 큰 양은 냄비 곁에 쪼그려 앉아 먹던 곤달걀 맛은 조금은 혐오스러운 그 이름과는 달리 일반 달걀보다 훨씬 더 고소한 맛이 혀끝에 감돌곤 했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노상 터미널에서 보았던 소년 하나가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건네준 곤달걀을 게 눈 감추듯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모습의 괴상함보다 실은 내 혀끝에 침이 고여 참기가 어려웠다. 싼값에 출출했던 뱃속을 이내 훈훈하게 해주던 그 기억 속의 음식을 성인이 되어 다시 마주하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였지만 선뜻 그 곁에 앉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왜 추억을 만나는데 용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상념으로 망설이던 끝에 막걸리 한 사발을 먼저 주문했다.
“헤헤헤헤. 어떻게 그 많은 세월을 다 일러…서른 살 넘어서 애 셋 나와서 평생을 여기서 보냈어. 자식들 여우살이까지 다 했지. 할 말이 한두 가지겠어?”
40년 시장에서의 지난했을 이야기를 단 몇 시간 만에 들으려는 것은 다시금 생각해보아도 참 염치가 없는 일이긴 하다. 막막함과 아련함이 뒤섞인 할머니의 표정이 잠시 눈에 어린다. 그래도 듣고 싶다고 투정어린 표정으로 청해 보았다.
“나쁜 사람들이 있어서 속을 썩였지만,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았지. 오는 사람마다 죄다 속 썩이면 못햐! 속 썩이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거, 그거야. 역전이 여긴데 전국 못 된 것들은 여기 다 집합할 거 아냐. 그 사람들을 다 겪어낼 때는 내가… 썩고 닳았어. 또 하나! 남의 돈이 한 푼도 거저 들어오는 법이 없다는 거. 노력한 딱 그만큼만 들어오는 거, 그거여.”

그때 곤달걀 옆에서 나란히 생물 고등어를 파시는 고등어 할머니 두 분 중에 한 분이 슬쩍 끼어드셨다.
“거저 먹으려면 도둑질을 해야 하는 겨! 도둑질을 아무나 햐?”
잔술을 먹던 손님들이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는 조금 더 무르익어갔다.
“이거 너무 싸고 흔하니까 우습게 여기는데, 계란 하나에 내 살과 피를 깎아 넣은 거여. 밤새도록 골라서 찌랴, 흔들랴, 흔드는 것도 그냥 해서는 이렇게 완전히 노른자와 흰자가 섞이질 못햐. 계란 하나에 열댓 번은 손이 왔다갔다 해야 겨우 파는 겨! 한 개에 이백 원, 삼백 원 하는데 얼마나 남겠어?"
할머니의 이야기 중에 ‘생긴 거’와 ‘안 생긴 거’의 차이를 몰랐던 나는 앉는 손님들이 구분하는 것을 잘 보고서야 그제서 ‘생긴 거’는 병아리가 다 된 것을, ‘안 생긴 거’는 무정란을 흔들어서 삶은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우쳤다. 이것을 알기까지 난 ‘생긴 거’라는 말이 나와서 ‘못 생긴 것’과 ‘잘 생긴 것’을 구분하는 줄만 알았다.
요즘은 기계가 있어서 편해졌지만 일일이 손으로 흔들어야 했던 시절에는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노라고 회상하셨다. 왜 하고 많은 것들 가운데 남들이 천시하는 곤달걀을 선택했느냐고 여쭸다.
“그 얘기도 하려면 길지, 암! 나는 부여 촌에서 농사도 많이 짓고 했어. 큰오빠는 대학 나와서 강남에 살다가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시골에서 먹고 살만치 살았더랬어. 그래봐야 농사일만 밤낮 해야 되고 하루 세끼에 새참까지 밥 해다 나르는 게 일이었지. 딸 다섯에 아들 둘. 내가 넷째 딸이야. (침묵) 어머니가 도시 사람들은 저녁거리가 없어도 옷 깨끗하게 입고 극장 구경 간다더라. 너도 그리 편하게 살다가 죽어라, 하시면서 날 여기로 시집을 보내신 건데…… 사람일이라는 게 어떻게 생각하는 대로만 되나? 시집 와서 극장은 세 번은 갔을 겨. 그래봐야 자기 타고난 대로 사는 거여, 부모 맘대로만 안 되는 거여. 하하하하! 부모님 뜻대로 40년째 여기서 이렇게 극장 자알~ 하고 있잖여?”
멋쩍은 할머니의 웃음 그 안에 슬픈 사연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마는 할머니의 재치 있는 반어법에 씁쓸하지만 삶을 긍정하는 그 깊은 속내에 함께 웃음을 보탰다. 이제 여우살이 다 마치셨고 몸도 아프신데 자식들이 말리지 않느냐고, 다시 여쭸다.
“굶어 죽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던 짓이니께 나오는 겨. 하던 짓 안 하면 바로 망가져. 시장 사람들은 다 그려! 저기 봐, 저 짝이 올해 여든셋, 그 옆이 여든이여. 나보다 얼마나 많어. 그래도 나오는 거여, 여기 사람들은 그런 거여!”

고등어 할머니들 이야기를 꺼내시는 찰나에 여든 되신 할머니 한 분이 마침 약봉지를 꺼내서 입에 털어 넣으셨다. 리어카에서 고등어를 파시는 동안 일찍부터 허리에 병을 달고 사셨단다. 일본 방사능 때문에 아무래도 고등어 장사에 영향이 있다고, 그래도 크게 현실을 낙담하지 않으셨다. 손님이 없는 동안 여든의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몰려오는 졸음과 싸우고 계셨다. 고단한 시장 상인들의 일상이 아롱거려지는 오후의 한때가 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TV에서 개똥쑥이 좋다니깐 사람들이 환장들 하지. 그리고 그 뭣이냐, 쇠비름? 예전에 시골에선 설사난다고 집에서 키우는 짐승들도 안 주던 거여. 그런데 방송에서 떠드니깐 또 환장들 하잖어. 와송인가 뭔가 그런 것들도! 그러고 보면 약 아닌 게 하나도 없어. 먹고 죽는 약 말고는 다 약이여! 하하하.”
곤달걀 할머니는 분명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에 어느 정도 억울함을 가지고 계셨다.
“해외에서는 보양식으로도 이걸 최고로 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한 달걀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벌써 다 죽었게? 내가 사십 년이여. 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표창장 받아야 할 사람이여. 돈 이천 원 가지고 어디 가서 이렇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자신을 노숙자라고 밝힌 어느 할아버지는 이곳이 아니면 본인은 끼니 때울 곳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서민 속에서 그들의 모든 삶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막걸리 한 사발과 따뜻한 단백질 덩어리인 곤달걀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막걸리 한 사발에 얼큰해오는 내게 그 어떤 배운 자들의 가르침보다 더 깊이 와 닿았다. 비록 부모님의 바람처럼 깨끗하게 차려 입고 극장 구경하러 가진 못하지만, 온몸으로 인생극장을 살아내고 계신 이분들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주인공들이 아닌가 말이다. 안도현 시인은 연탄 한 장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노래했지만 대전역 깡시장에선 곤달걀 한 개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취재블로거 국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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