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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헌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낡지 않는다-원동 헌책방 거리에 다녀와서
  • 담당부서 공보관실
  • 작성일 2013-09-06

☞ 이 글은 이츠대전TV 블로그 작가단의 글입니다. 대전시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글쓴이 : 국은정 작가>

 

학창 시절 학교 앞 상점들 가운데 두어 곳은 ‘헌책방’이었다. 보통은 선배들이 쓰던 자습서나 문제집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지만, 우연히 읽고 싶었던 책이 눈에 띄면 크게 주저하지 않고 선뜻 책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

누군가 읽고 썼던 책이어서 꺼려지기보다는 누군가의 손때 묻은 책장을 넘겨볼 수 있어 오히려 설레었다. 간혹 찢겨진 페이지나 얼룩, 메모들을 만날 때조차 인상이 찌푸려지기보단 오히려 솔깃해지는 기분이었다. 작은 단서들을 가지고 유물이 발견된 당시의 상황들을 추측해내는 고고학자의 눈빛이 되어보는 기분이랄까.

대학시절엔 바로 그런 낡은 것들에 깃든 풍요를 아는 몇몇 동기들과 함께 청계천 8가와 헌책방 거리를 찾은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그때의 풍경들은 눈에 선하다. 청계천이 복개된 지금에는 그야말로 추억 속에만 박제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대전에도 오래 전 향수를 간직한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나가는 헌책방 거리가 있다. 가장 외지고 인적이 드문 원동 시장 종합상가 한 쪽 코너에 십 여 개의 작은 헌책방들이 어깨를 기대고 모여 있다. 불볕더위가 기승이던 8월 어느 날 헌책방 거리를 찾았다. 거리는 예상처럼 한산했다.

 

원동 헌책방 거리

 

가림막 하나 없이 작렬하는 오후 땡볕을 그대로 받아내는 책방들은 빼꼭히 채워진 헌책들의 영역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의 좁은 통로를 제외하면 책방 내부는 오로지 책들뿐이었다. 천장까지 켜켜이 쌓아 올라간 책들의 탑을 보고 있자니 금세 입이 벌어진다.

어쩌면 헌책들의 내력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헌책방의 사장님들은 선풍기 한 대도 없이 드물게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낚싯대를 물속에 던져두었지만 물고기가 물지 않더라도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의 표정과 그곳 사장님들의 표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영창 서점안에 책이 높이 쌓여 있는 모습

“손님들이 예전만 못하죠?”

손님을 기다리는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힐끗 바라 본 사장님은 이내 눈치를 채셨나보다. “어디서 나오셨나?” 툭 질문을 던지시면서 근래에 크고 작은 곳에서 취재를 나왔었다는 이야길 덧붙이신다. 인터뷰라는 형식보단 그저 진솔하게 사는 얘길 듣고 싶었던 마음이 더 먼저였지만 의중을 들킨 것 같아서 마음이 살짝 달아올랐다.

올해로 헌책방 경력이 33년째 되셨다는 송진헌(59세) 영창 서점 사장님은 헌책방이 살림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훈풍이었던 시절을 “괜찮았지, 그땐!” 이라는 한마디로 추억하셨다. 추억 속의 훈풍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헌책방 경기를 몸소 절감하면서도 어째서 그만 두지 못하시는 거냐고 감히 물었다. 묻는 쪽도 답하는 쪽도 달갑지 않지만 굳이 또 확인을 받는다. 입술 끝이 쓰다.

“돈 벌려고 나오는 게 아니야. 이제 와서 뭘 하겠어. 어디 가서 경비를 하겠어? 못 해! 근근이 푼돈 버는 정도지. 새 책 파는 서점들도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어.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책을 덜 읽지, 안 읽어! 모든 정보가 스마트 폰에 다 들어 있는데 누가 책을 읽으려고 하겠어. 모든 걸 쉽게만 접하려고 하니깐 안 돼! 흐름이 그러니까.”

바로 이웃하고 있는 고려당 서점의 장세철(79세) 사장님이 이 헌책방 거리에서 책방 경력이 가장 오래이신 연장자라고 소개해주셨다. 역시 눈치가 빤한 관계로 일단 그늘로 자리를 이동해서 얘기를 나누자 권하신다. 그분은 사실상 헌책방 거리의 터주대감이셨다.

사장님은 고이 간직했던 편지를 꺼내듯 주머니 속에서 정성스레 접어둔 메모지를 펼치셨다. 그곳에는 이 헌책방거리와 관련한 짧은 역사들이 적혀 있었다. 이 거리에 대한 애정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랴, 56년에 원동시장에 이 건물이 처음 세워졌지. 처음엔 헌책방은 없었어. 신간을 파는 원동서점이 이 건물에 처음 있던 서점이었고, 60~70년대가 지나면서 노점으로 헌책방들이 생겨났어. 그러다가 단속이 심해져서 노점을 못하게 되니까 하나둘씩 건물 안으로 들어온 거야. 내가 두 번째로 들어왔지. 이제 45년 됐어.”

 

고려당 서점 장세철 사장님

 

대전의 헌책방뿐 아니라 원동시장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오신 산 역사를 만나고 있었다. 헌책방 외길로 45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셨다는 말씀에 저절로 감탄이 새어나왔다. 연로하신 것에 비하면 사장님의 목소리는 청년의 그것과 비교하여도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의 총기가 살아있었다.

“그땐 대전 시내 전체에서 25군데 정도 있었지. 지금은 전국적으로도 많이 사라지니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지금은 시내 전체에 12군데 정도가 남았을 거야. 며칠 전에도 서울 어느 잡지사에서 취재를 해갔어.”

사장님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미국에서 나온 백과사전 전집을 구해달라고 했던 오랜 단골의 전화였다. 대강 전화의 내용을 엿듣자니 선약해둔 전집을 꼭 자기에게 팔아야 한다는 다짐을 받으시는 모양이었다. 모르긴 해도 늙은 사장님은 취급하는 도서의 장르는 해외 서적은 물론 정치, 의학과 같은 전문서적에까지 이르기까지 다양한 듯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내내 사장님의 주름진 손에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이 나이에 다른 데로 취직도 못하겠지만, 나는 적성에 맞아, 이게! 요즘 젊은이들은 책 내용을 물어보면 나보다도 몰라. 그만큼 깊이 읽지 않으니까. 사람들과 조금만 얘기해보면 무슨 과를 전공한 사람인지 딱 알아.”

책을 열심히 읽고 자부심을 갖고 사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딸 셋은 모두 선생님이 되셨단다. 사장님의 노하우는 ‘좋은 책을 가지고 있으면 잘 팔린다’였다. ‘민중문화대백과’ 같은 것은 사장님이 가장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라고 하신다. 45년 헌책방 경력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매일 와서 새로 들어온 책 없나 보고 가는 단골도 있어. 나이가 이리 되서 안 하려고 집에 가 있으면 또 단골들에게 전화가 와. 다시 나오게 돼.”
“더 연로하시면 그땐 처분하셔야겠네요.”
“못하게 될 때까진 해야지. 누가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몰라도… 있겠어?”


박문서림 앞 풍경

 

79세 노익장 앞에서도 가는 세월이 무심하긴 마찬가지였다. 헌책방과 함께 인생의 황혼을 맞고 계신 사장님도, 또 그 거리가 자꾸만 애달파왔다. 그러고 보면 얼뜨기 문학소녀였던 나 역시도 어느덧 이만큼 나이를 먹지 않았던가. 이곳에 사장님들은 모두 이 헌책방 거리의 보존이나 활성화는 애저녁에 물 건너간 일이라고 고갤 내저으셨지만, 어수룩하게 나이 들어가는 나에게는 그래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억지스럽게라도 믿어 보고만 싶다. 조금 더 솔직히 생떼를 부려보고 싶은 맘이다. 물론 추억은 당장에 고픈 배를 채워주진 못한다.

다음에 꼭 들르기로 약속을 하고 나오면서 지난 5월, 은행동에 문을 연 ‘알라딘 중고서점’ 매장에 들렀다. 인터넷 대형 서점이 전국에 중고매장을 늘려가면서 지역에서도 벌써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지만, 직접 찾은 매장은 원동 헌책방 거리와는 그 규모와 편의시설 면에서 비교가 어려울 정도였다. 구멍가게와 대형마트인 셈.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이 누군가 보았던 중고라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대형서점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서점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산하기 그지없던 헌책방 거리에 비하면 평일 오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굳이 어느 쪽이 잘 되어야 한다고 편들고 싶지 않지만 최근 대형마트들의 공격적인 영업점 확장으로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구멍가게들이 떠올랐다. 며칠 전에도 점포 한 곳이 장사를 접었다고 아쉬움을 애써 감추던 헌책방 사장님의 이야기도 뇌리를 스쳤다.

 

은행동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새것이 늘어났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사라진 것도 늘어났다는 얘기다. 너무나 쉽고 뻔한 이 공식 앞에서 가끔씩 가슴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사라지는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갈수록 가슴 한 쪽이 허전해지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 느끼는 아쉬움은 아니겠지. 사라진 그 대상이 추억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라면 그 아쉬움의 깊이는 훨씬 더 깊지 않을까. 여전히 나는 뻔한 결과를 보면서도 생떼를 부리고 싶은 모양이다. 돌아오는 내내 천지인이 부르던 ‘청계천 8가’의 노랫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그래, 책은 헤지고 낡아지더라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절대로 늙지 않는다.

 

이츠대전TV 원도심이야기 취재블로거 국은정 작가
원본 콘텐츠 : 대전시인터넷방송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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