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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대전 옛 중앙극장 앞 노점 거리에서 만난 만능사, 장국현 할아버지
  • 담당부서 공보관실
  • 작성일 2013-05-31

☞ 이 글은 이츠대전TV 블로그 작가단의 글입니다. 대전시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글쓴이 : 송성영 작가>

40년 전, 그때 그 시계 수리점이었을까?
대전 옛 중앙극장 앞 노점 거리에서 만난 만능사, 장국현 할아버지

오랜만에 찾아간 대전 중앙극장이 사라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사라진 지가 10년쯤 됐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주차장이 들어서 있더군요. 제가 부러 찾아간 곳은 중앙극장이 아닙니다. 중앙극장 앞에 늘어서 있는 온갖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노점 거리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장 난 손목시계를 차고 그 노점 거리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던 기억을 되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40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 때였습니다. 시간관념이 별로 없어 가끔씩 지각을 하곤 했던 어리버리한 시골 촌놈이 그 귀하던 손목시계를 선물 받았습니다.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아마 도시에 살던 사촌형이나 가까운 친척이 쓰던 시계를 물려받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도 난생 처음 턱하니 손목에 차보는 보물 같은 시계였습니다.

"야, 시방 몇 신지 물어봐봐."

낡은 가죽에 매달린 손목시계였지만 친구들에게 온갖 똥폼 다 잡았지요.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을 때도 내 손목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손목시계가 어느 날 멈춰 버렸던 것입니다. 손목시계를 찬 채로 세수를 했기 때문인데 시계 유리 안쪽에 물기가 서리기 시작하더니 그만 딱하니 초침이 멈춰 버린 것이지요.

부모님에게 얘기하면 부주의했다고 된통 야단을 맞을까봐 혼자서 끙끙 앓다가 금은방 앞을 끼웃거렸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금은방에서 시계를 취급하고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하기도 했습니다. 시계를 고치기 위해 한 달 동안 꼬박꼬박 용돈을 모았지만 촌놈 용돈으로는 그 비까번쩍한 금은방에 맡기는 것은 턱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대전 중앙극장 앞을 지나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중앙극장 앞에는 노점들이 늘어서 있었고 거기서 허름한 시계 수리점을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번듯한 금은방 시계 수리점 보다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수리할 수 있을 것 같아 공연히 그 앞을 오락가락해가며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하지만 뭔가 의심쩍었습니다. 점포 같지도 않은 허름한 노점, 거기다가 노점 주인의 행색이 어쩐지 야바위꾼처럼 보였습니다. 공연히 그 앞을 오락가락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베라 별 생각들이 스쳐갔습니다.

'점포도 없이 길거리에 나 앉아 뭔 수리를 한다고, 저 아저씨에게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하면 어쩌지, 고친다고 해놓고 아예 못 쓰게 고장 내 놓으면 어쩌지...'

여러모로 믿음이 가지 않아 결국 발길을 돌리고 말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40년 전에 멈춰 있던 그 시계 속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 그 중앙극장 앞 노점 거리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40년 전의 기억은 어느 수리점인지를 전혀 재생해 내지 못했습니다.


대전 옛 중앙극장 앞, 온갖 잡화를 취급하는 노점거리
[대전 옛 중앙극장 앞, 온갖 잡화를 취급하는 노점거리]

 

중앙극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주차장이 생겼지만 노점 거리는 크게 달라져 있지 않았습니다. 40년 전에도 간판이 붙어 있었는지는 기억할 도리가 없었지만 노점들은 제각기 상호를 내걸고 있었습니다.

시계, 구두, 안경, 열쇠, 도장을 비롯해 라이터, 면도기, 전기난로 등 온갖 일상용품들을 판매하면서 거기에 따른 수선을 전문으로 하는 노점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만능사. 손목시계를 수리하기 위해 돋보기안경을 쓰고 작은 나사를 돌리고 있는 만능사 주인 장국현(80세)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40년동안 노점거리에서 잡화며 시계 안경테 등을 수리해오고 있는 장국현 할아버지(80세)
[40년동안 노점거리에서 잡화며 시계 안경테 등을 수리해오고 있는 장국현 할아버지(80세)]

 

할아버지의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연장통에는 크고 작은 수리 공구들이 얼핏 봐도 수십 가지는 돼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만능사, 그 이름 그대로 만능이라고 합니다. 면도기, 드라이, 라이터, 고장 난 시계, 부러진 안경테에 여행용가방에 이르기 까지 온갖 것을 다 수리한다고 합니다.

 

수리에 필요한 할아버지의 온갖 공구들
[
수리에 필요한 할아버지의 온갖 공구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장국현 할아버지는 중학생 시절, 내가 손목시계를 고치려고 끼웃거렸던 그 시점인 40년 전부터 중앙극장 앞 노점 거리를 지켜왔다고 합니다. 그때 그 아저씨였을까? 뜨끔했습니다. 함부로 야바위꾼 취급을 했던 그 아저씨의 얼굴은 기억할 수 없지만 장국현 할아버지에게 뭔가 죄 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점포 꾸려 생활하던 사람들이 많이들 죽었슈. 내 옆 점포 주인도 죽어서 문 닫았잖유. 저쪽 집도 얼마 전에 죽었고, 저기 저, 카브 돌아서 저쪽 사람도 몇 년 전에 죽었슈."
"예? 왜유?"
"내가 여기서 40년을 살았는디, 그동안 세월이 얼마여, 나이 먹어 안 죽고 어떻게 배기겠슈?"

충남 청양 칠갑산 골짜기가 고향이라는 만능사 할아버지. 대전은 전쟁과 산업화를 거쳐 교통의 중심지로 거듭나면서 전국 팔도 사람들을 많이도 불러 들였습니다. 심심산골 고향 떠나 번잡한 대전에 정착한 장국현 할아버지도 그런 분들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50년대 중반에 죽지 않을 만큼 군대 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어 먹을 농토가 없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40세 될 무렵에 이곳 중앙극장 앞 잡화점 거리로 흘러들어와 뿌리 내렸다고 합니다. 따로 수리 기술을 배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눈썰미가 좋아 다른 사람들이 고치는 것을 곁눈질로 배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잔기술을 배워 작고 보잘것없는 노점을 40년 동안 지켜 왔다던 것입니다.


온갖 잡화를 취급하는 만능사
[갖 잡화를 취급하는 만능사]

 

"주로 어떤 것을 고치세요?"
"안경테 같은 것을 땜질하는 게 내 전공유. 딴 데서 못 고치는 플라스틱 부러진 것 같은 거 내가 다 고쳐유. 부러진 자국에 따라 표 안 나게 하거나 다시 부러지지 않게 고치는 것이 내 기술이지."

"중앙극장도 사라지고, 예전보다 손님이 많지 않츄?"
"극장하구 우리 손님하고는 상관없지만 그래도 중앙극장 있을 때가 좀 나았쥬. 견물생심이라고 극장에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다보면 아무래도 사고 싶은 충동이 생기니께…."

"요즘은 시계 같은 걸 고치러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겠네요?"
"벨로 없지유, 가끔씩 노인들은 고치러 오는데 젊은이들은 거의 없슈, 그냥 쓰고 버리는 거 같튜."

"요즘 젊은이들이 함부로 버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젊은이들 말 들으면 공장을 부지런히 돌리려면 자꾸만 새로 구입해서 써야지 자꾸 고쳐 쓰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네유…, 그 말도 맞는 거 같기도 하구."

할아버지도 시류에 맞춰 살아가고자 합니다. 쉽게 사고 버리는 것이 못 마땅하지만 젊은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중국산이 문제여, 값싸게 나오니께, 자꾸만 사고 버리는 거지."

"중국산도 고치는 경우가 있남유?"

"중국산은 대부분 한번 쓰고 버리쥬. 중국산은 안 고쳐유, 고치는 값이 더 들어유. 중국산은 원가 줄이려구 값싼 부품을 쓰니께 고치려면 부품을 다 바꿔야 해유. 새로 사는 게 더 낫지요. 그래서 고장 나믄 그냥 내 버리는 거쥬."

쉽게 버리고 쉽게 사고 또 버리고, 사실 버려야 할 것은 생활용품이 아니라 소비문화라는 것을 수리 전문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산은 고치는 값보다 새로 사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
[중국산은 고치는 값보다 새로 사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

 

시계며 안경테, 4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용품들을 수리해왔을까? 굳은살이 박혀 있는 할아버지의 손가락. 그 굳은살 박힌 손가락을 보면서 장인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싶었습니다.

 

시계, 안경테를 비롯해 4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용품들을 고쳐왔을까? 굳은살이 박힌 할아버지
[
시계, 안경테를 비롯해 4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용품들을 고쳐왔을까? 굳은살이 박힌 할아버지]

 

수리점 얘기뿐만 아니라 농사일을 비롯해 이런저런 사소한 개인사를 주고받고 있는데 팔순의 장국현 할아버지보다 더 연세가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만능사 앞을 기웃거립니다. 만능사 저만치 점포에서 도장을 파고 있는 할아버지라고 합니다. 50년 넘게 도장만을 파 왔다고 하는데 요즘은 컴퓨터로 뽑아내기 때문에 손으로 파는 도장 일은 사향 길로 접어든 지 오래라고 합니다.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만능사 장국현 할아버지와 만나 두 시간쯤 대화를 나누고 마무리 하려는데 할아버지가 근처 다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를 시키십니다. 전화 한지 10여 분 만에 다방 아줌마가 커피 포터를 들고 나타납니다. 커피 한 잔에 2천원. 내가 잽싸게 돈을 꺼내 다방 아줌마에게 건네는데 장국현 할아버지가 그 돈을 빼앗아 완강하게 내 손에 다시 쥐어 주십니다.

 

할아버지가 시켜준 온정이 담긴 2천원 짜리 다방 커피
[아버지가 시켜준 온정이 담긴 2천원 짜리 다방 커피]

 

할아버지와 두 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만능사에 두 사람의 손님이 다녀갔습니다. 한 사람은 손목시계 건전지를 3천원에 갈아 넣고 또 한사람은 식당에서 가스불 붙일 때 쓰는 5천 원짜리 길쭉한 라이터를 사갔습니다. 건전지와 라이터의 원가에 커피 값을 제하면 남는 게 없어 보입니다.

"아이고,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고마운 말씀 많이 들어서 제가 사야 되는디. 빈손으로 와서 공연히 커피만 얻어 마시네유."
"뭔 말씀을, 날 찾아 온 손님인디 당연히 내가 내야쥬."

또 다시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가진 것 많고 배운 거 많음에도 서민들 등쳐먹는 진짜 야바위꾼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까까머리 중학생 때 노점상이라 하여 함부로 야바위꾼 취급했던 마음의 빚을 갚지 못했는데 한 잔의 커피, 그 이상의 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만능사 할아버지와 함께 홀짝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장국현 할아버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넵니다. 친구처럼 지내는 단골손님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좀 어뗘?"
"오늘은 일이 통 없네."
"그럼 이따가 술 한 잔 하지."
"술도 잘 안 먹는 사람이 무슨 술을."
"그래도 혼자서는 잘 마시네."
"혼자서 무슨 재미로 마셔. 함께 마시면서 얘기하고, 그래야 술맛이 나지."
"언제 문 닫는데."
"다섯 시도 좋고... 여섯시건 일 곱 시건 내 맘대로 지. 아, 서두를 거 뭐 있어. 내가 사장인디 내 맘대로 문 닫지."

장국현 할아버지와 대화를 마무리 하면서 살아오신 세월이 어떠하셨냐고,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살아온 세월? 허망하쥬. 먼지 풀풀 날리는 노점에서 한 평생 젊음을 다 불태우고 늙어서 황혼 길로 접어들었으니 한심 하쥬. 어떤 때는 그만둬야 하는데 싶어도, 그래도 배운 기술이 이게 전부니께. 한편으론 또 그려, 돈 없는 사람들, 급한 사람들 있으면 서비스 해 줄 수 있어 좋고, 심심풀이로 그냥 앉아 있는 거지유 뭐......"

40년이라는 세월이 컴퓨터 속도만큼이나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대전 옛 중앙극장 앞 노점 거리는 40년 전, 어린 내 손목시계처럼 멈춰 있습니다. 시원찮은 돈벌이지만 생면부지의 낯선 이에게 커피 값을 낼 수 있는 충청도의 여유와 인심이 있습니다. 말씨만큼이나 느릿느릿 세월을 앞질러 가지 않는 만능사 장국현 할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취재블로거 송성영 작가('모두가 기적 같은 일' 저자)
원본 콘텐츠 : 대전시인터넷방송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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