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영화 ‘시네마 천국’ 속으로 사라진 극장-60,70년대 대전의 옛 영화관
- 담당부서 공보관
- 작성일 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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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무렵, 대전 아카데미 극장 앞을 지나가다가 그녀를 만났습니다. 남자 친구와 함께 극장에서 마악 나오고 있던 그녀의 얼굴은 사과빛깔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녀가 나온 아카데미 극장 간판에는 영화배우 이미숙이 요염한 자태가 그려져 있는 ‘뽕’을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맘에 두고 있던 독문과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녀의 눈빛과 마주친 내가 오히려 더 당황스러워 했던 그 기억 속의 대전 영화관, 아카데미 극장의 옛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1964년에 문을 연 개봉관 대전 아카데미 극장은 2002년 5관을 갖추고 동시에 다섯 편의 영화를 상영 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관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10개관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옛 아카데미 극장 자리.건물이 새롭게 들어서 지금은 멀티플렉스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신문,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다가 고향 대전에 내려와 다시 돈 안 돼는 잡지사를 꾸려갈 무렵에 만났던 착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꽉 차 있었지만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 신세였기에 이별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찾아 간 곳은 대전 중앙극장. 그녀가 보여준 영화는 페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열연을 펼쳤던 ‘사랑과 영혼’이었습니다.
눈물 콧물로 감상했던 그 영화, ‘사랑과 영혼’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와의 마지막 이별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 나는 영혼이 없는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는 그 대전 중앙극장도 사라진지 이미 오랩니다. 옛 건물은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에 썰렁한 유료 주차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대전에 있는 옛 재래식 극장들이 사향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은 텔레비전의 보급과 맞물려 있습니다. 동아일보 (1972년 6월 3일자) 기사를 보면 1970년대 초반부터 이미 모든 극장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전 시내 개봉극장인 신도극장(대표 김기양) 중앙극장(대표 최준영)은 극장 입장료를 현재의 백오십원에서 67%내린 오십원씩으로, 재개봉 극장인 자유극장은 칠십원에서 이십원으로 내리겠다고 대전시에 신고했다.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면서 올해 들어 관객이 크게 줄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인하 이유 밝혀. 시 관계자는 시내 17개 극장이 모두 운영난을 격고 있어 현재상영중인 프로가 끝나면 일제히 내릴 움직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를 보면 당시 대전에는 개봉관인 대전극장, 아카데미극장, 신도극장, 중앙극장 등을 비롯, 재개봉 극장인 동화극장, 성보극장, 고려극장, 명보극장, 중도극장, 자유극장 등 모두 17개의 극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대흥동 로타리 부근에 위치한 동시상영관이었던 옛 자유극장 자리.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텔레비전의 보급은 그나마 옛 영화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앞세운 위성TV와 케이블TV 등의 출연으로 웬만한 영화를 개봉 직후 곧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다운 받아 볼 수 있는 인터넷 보급과 거대 자본을 앞세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나면서 2000년 초반에 들어서는 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렸던 대전지역의 옛 극장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았습니다. 중앙극장은 유료주차장으로 전락했고 신도극장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고 서라벌극장은 여관으로 업종을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옛 대전천변에 자리한 신도극장 건물
▲신도극장 매표소. 옛 모습이 남아 있지만 더이상 영화를 상영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옛 영화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단 한 곳, 인동에 자리한 동화 극장. 동화극장은 한번 표를 끊고 들어가면 두 편의 영화를 연속해서 볼 수는 동시상영관 이었습니다. 옛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일반 영화를 상영하지 않습니다. 필름이 아닌 DVD를 통해 영화를 보는 성인영화 전용관입니다.
▲대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극장인 동화극장. 동시상영관이었는데 지금은 성인영화관으로 운영 중이다.
성인 영화관으로 바뀐 동화극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카메라를 앞장세웠습니다. 치졸하게도 ‘나는 낯 뜨거운 성인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취재하러 간다’는 것을 표 내기 위해서 였지요. 대학 시절 영화 ‘뽕’을 보고 나오던 독문과 여학생과 마주쳤을 때처럼 공연히 성인영화관을 어슬렁거리는 자체가 낯 뜨거웠기 때문입니다.(별 내용도 없이 노골적으로 온 몸을 노출하여 성교를 하는 지금의 성인영화와 그 차원이 다르지만 1980년대 중반에 나온 영화 ‘뽕’은 당시 성인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사실로 이어져 있는 동화극장 계단
예전의 동화극장은 다른 극장들처럼 극장 입구에 매표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영화표를 끊으려면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드넓었던 1층은 창고로 쓰고 있고 2층에 성인 영화 관람석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관람료를 받고 있는데 매점이 곧 매표소인 것입니다.
“여기가 예전에는 영사실이었지...”
낡은 필름을 돌리던 자리, 영사실. 유년시절 영화관에서 가장 비밀스럽게 다가왔던 곳이 바로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던 영사실이었습니다. 성인영화관의 매점으로 전락한 동화극장 영사실에는 60,70대 할아버지 몇몇이 맥없이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매표소를 겸하고 있는 동화극장 매점. 옛 영사실 자리]
성인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몇몇에 불과했습니다. 발가벗은 남녀가 뒤엉켜 거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성인영화관의 그 몇 안 돼는 관람객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습니다. 낯 뜨거운 영화관에서 나와 매표소 겸 매점이 돼 버린 옛 영사실에 앉아 문득 영화 ‘씨네마 천국’이 떠올랐습니다.
적어도 나에겐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는 영화 ‘씨네마 천국’(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영화가 세상의 전부인 어린 소년 토토와 마을 극장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애틋한 우정이 싹트던 곳이 바로 영사실입니다.
담배 연기 자욱했던 어린 시절의 영화관(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못된 악인들에게 착한 사람이 얻어맞기라도 하면 한탄이 절로 쏟아져 나왔고, 결국 선한 사람들이 악인들을 물리치게 되는데 그 때마다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특히 동시 상영관에서는 낡은 필름 탓으로 스크린에 비가 내렸고,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 필름이 끊기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야유의 휘바람 소리로 극장 안이 떠들썩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키스 씬이 나올 때는 우리 같은 조무래기 촌놈들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공연히 낯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거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2 층 관람석에서 몰염치한 사람들이 남 몰래 침을 뱉으면 아래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영화 ‘씨네마 천국’에도 이런 나의 어린시절 영화관 풍경들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영화관과 동시 상영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필름을 수송하는 장면, 이층에서 침을 뱉거나 같은 영화를 몇 번이나 보고 대사까지 외워버린 관객... ‘씨네마 천국’의 배경은 2차 대전 직후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작은 마을이지만 나의 유년시절의 영화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명절이 돌아오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극장 뒤편에서 까치발로 영화를 보기도 했던 옛 극장에서는 영화만 상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다 할 문화시설이 없었던 그 시절 남진, 나훈아, 김세레나 등 인기가수들의 공연장이 되기도 했고 정치인들의 전당대회가 열리고 육체미 대회까지 개최하기도 했던 곳이 또한 옛 극장이었습니다.
청춘 남녀들의 테이트 장소이기도 했던 대전의 옛 영화관. 사랑과 낭만, 만남과 이별이 공존했던 옛 영화관은 ‘씨네마 천국’에서 극장이 사라지듯이 대전의 옛 극장들은 시대의 흐름에 묻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의 검열로 잘려나간 키스씬들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있는 ‘씨네마 천국’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처럼 대전의 사라진 옛 극장에도 빛바랜 추억속의 사진과도 같은 감동이 남아 있습니다.
까치발을 들고 결론이 빤한 영화 속에 푹 빠져 유치찬란하게도 울다가 웃다가 야유와 박수를 쳐대고 담배 연기 자욱한 낡은 필름에 비가 내리고 수시로 필름이 끊겼지만 그 불편한 추억들은 고스란히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 나 같은 촌놈에게는 영화관에 앉아 있는 것만 해도 감동이었지요.
☞ 이 글은 이츠대전TV 블로그 작가단의 글입니다. 대전시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취재블로거 송성영 작가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저자)
원본 콘텐츠 : 대전시인터넷방송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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