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현장! 좋은마을만들기-갑동에서 핀 꽃, 피어날 꽃들
- 담당부서 공보관
- 작성일 2014-07-07
KAIST 산업디자인과 김명석 교수는 유성구 갑동을 눈에 담고 있던 세월만 해도 30년이 다 되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30대 중반에 KAIST 교수로 부임해 대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고, 올해가 정년퇴임을 맞는 해이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 대부분을 대전에서 일궈왔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갑동을 바라보았고 또 갑동에 안착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김명석 갑동 마을공동체 대표]
갑동에 대한 짝사랑
“대전과 충남의 경계선인 갑동 고개를 넘어 다니면서 여러 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광에 매료됐어요. 그때부터 갑하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갑동을 짝사랑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꼭 저 마을에 살아야겠다’ 생각만하고 지냈죠. 7년 전, 우연히 마을에 들렀다가 지금 이 집과 인연을 맺었고 그렇게 여기서 산지가 6년이 넘었습니다.”
갑동의 마을 구성을 보면 여느 마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 150~170세대가 마을을 이루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농사지으며 살던 선주민들은 20세대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을 팔고 떠났으며, 그 자리를 메운 사람들은 김명식 교수처럼 갑동에 이끌려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결국 마을 구성원의 80% 이상이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던 사람들로 채워진 것입니다.
“이곳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이상으로 볼 수 있는데다가, 또 각자 개성이 강해요. 나 역시도 교수 신분이고,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한 분,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 외견상 개인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연령대도 빌라에 사는 젊은 세대들을 제외하고는 새로 이주한 사람들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중후반까지 분포해있으며, 선주민들은 70~80대의 노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새로 이주하고 맞은 처음 1년은 마을 안에서 서로 간 잘 알지 못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문화에 관심이 많던 김 교수는 마을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지내는 환경에 아쉬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갑사모와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
마을에서 조용히 운영되고 있던 ‘갑사모(갑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김 교수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흔쾌히 갑사모에 참여한 김 교수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식사를 하는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모임의 활동을 좀 더 확장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동네 청소를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죠. 각자의 집 앞은 모두 깨끗합니다. 그런데 큰길가에 있는 천변은 집이 없다보니까 지나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많아요. 그래서 모임을 가지는 날 아침에 동네 청소를 하자고 제안했죠.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이 일도 벌써 5년이 되었네요.”
이렇게 갑사모가 작지만 마을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갑사모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집이 41세대에 이르고, 뭔가 본격적으로 마을을 공동체로 이끄는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일이 만들어졌습니다.
첫 번째 사업이 ‘갑동문화학교’입니다.
김 교수의 이웃이자 친구인 충남대 의대 김삼용 교수가 교장을 맡고, 함께 문화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마을에 있는 ‘콘솔라타 수도회’의 공간을 활용해 마을 주민들이 같이 영화를 보고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대전시하고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사업이 있어 인연이 있었죠. 그래서 ‘이츠대전’을 꾸준히 받아보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대전형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접했습니다. 이거 괜찮겠다싶어 의견을 모아 10여 쪽이 넘는 제안서를 정성껏 썼죠. 머리 허연 사람들이 뭔가 하겠다고 하니까 잘 봐줬는지 무난히 선정되었습니다.”
갑사모는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된 것을 기회로 갑동에서 진행했던 사업들을 더욱 확대하고 사람들 사이에 깊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첫 발자국은 작은 모임으로 자연스레 사람 사이의 유대를 만드는 일들이었습니다. ‘더불어 걷는 모임’, ‘갑하산 등반 모임’ 등 서로 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들을 꾸렸습니다.
“그냥 같이 놀자고 해도 사람들은 잘 모이지 않죠.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잇기 위해서는 문화로 소통해야 합니다. 문화는 다양해요. 노래 부르기, 이야기하기, 함께 밥 먹는 것, 모두 문화입니다. 이렇게 작은 취미들을 모아 문화적 소통을 이어가는 거죠. 그래서 전체 사업의 이름도 ‘문화로 소통하는 건강한 전원마을 만들기’입니다.”
전체적인 사업구상과 함께 가장 먼저 이끌어낸 사업은 모든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마을 잔치였습니다. 지난해 6월,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선정 기념으로 ‘시가 있는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 것입니다.
[지난해 갑동 마을공동체가 개최한 시가 있는 작은 음악회]
마을에 있는 카페의 너른 잔디마당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시 낭송가를 초대하고, 음악인들이 함께하고, 마을의 아마추어 성악가가 노래하고, 김 교수도 클라리넷으로 일조했습니다. 마을의 재능을 나누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 행사는 갑동 주민뿐 아니라 인근 주민까지 참가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마을회관, 새로운 중심이 되다
다른 문화프로그램도 진행됐습니다. ‘천호리에 집짓고 더불어 살기’는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타 지역의 예를 공부하는 자리로, 갑동에서 어떤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갈지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제1회 갑동마을 바자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이 바자회가 성립된 배경에는 마을회관의 정비라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여러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장소가 문제였죠. 그래서 떠올린 곳이 마을회관입니다. 지은 지 30년 정도 된 건물인데,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회관은 주민들이 잔치도 벌이고 모이는 중심이었죠. 작년까지만 해도 선주민만 조금 모여 수요일에 같이 식사하는 정도로 이용되고 있었어요.”
1층은 종종 사용됐지만. 2층 공간은 십 수 년 간 방치돼왔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을 활성화시키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갑사모 회원들이 모여 일단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낡은 가구를 치우고 청소를 끝내니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낡은 바닥은 여기저기 일어나고, 벽의 칠은 벗겨진데다가, 전기도 성치 않았습니다.
갑사모는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건설업을 하는 주민의 협조로 벽 공사를 하고, 바닥은 인테리어업을 하는 분의 협조로, 또 전기공사는 관련 사업을 하는 주민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가구는 주민들 집에서 하나씩 들고 나왔습니다. 피아노를 선뜻 기증한 분도 있었습니다.
[갑동 마을회관 2층을 꾸미기 위해 주민들이 기증한 각종 물품]
마을회관의 첫 정비는 이렇게 끝났지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회관을 산뜻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마을 바자회를 열자는 의견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처음 연 마을 바자회는 뜻밖에도 성공적이었습니다. 각자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들고 나와 내놓자마자 주민들은 앞 다투어 서로의 물건을 샀습니다. 바자회가 정식 오픈하는 오후 2시에는 이미 반 이상이 팔려나갔습니다.
바자회의 수익금으로 회관에 커튼을 달고 빔 프로젝터를 설치했습니다. 딱 하나 부족했던 난방시설은 치과를 운영하는 주민이 기증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마을회관은 선주민과 새 주민이 모여 마을을 꾸려나가는 중심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갑동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열린 마을 바자회]
노령화되고 있는 마을의 특성을 고려해 건강에 관련된 프로그램도 많이 진행했습니다. KAIST 교수를 초빙해 ‘생활습관과 음식을 통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열어 건강에 관한 기초지식을 다졌고, 배달강좌로 진행한 ‘요가교실’을 비롯해 함께 걷고, 함께 산에 오르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임을 활성화시켰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사업 중에 하나가 ‘무료건강검진’입니다. 마을 주민인 의대교수의 중재와 유성구 보건소의 도움으로 주민 전체의 건강검진을 실시한 것입니다. 장소는 역시 새롭게 태어난 마을회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일회성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실시해 주민의 건강지표를 면밀하게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뼈를 묻을 마을
“처음에는 저 사람들이 모여 뭐하나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했지요. 그런데 주민 모두가 모일 수 있는 행사를 두어 번 치르고 나니까 우리를 보는 눈빛들이 달라졌어요. 마을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하는구나, 그렇게들 보기 시작했죠.”
갑사모는 2014년 사업도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한마디로 갑동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천변을 깨끗이 정화하고 꽃길을 만들 생각입니다. 지금 갑동을 흐르는 물이 바로 대전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입니다. 윗물부터 깨끗이 하는 거죠.”
또 합의를 이끌어 마을에 산재한 음식점의 간판을 미적으로 정리,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고 예쁜 마을로 만들 희망도 갖고 있습니다.
김명석 갑사모 회장은 마을공동체에 대한 굳은 신념을 내비쳤습니다.
“풀뿌리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만나서 서로 숟가락을 놓고, 밥 같이 먹고, 같이 마당 쓸고, 인사하고, 나누다보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장소를 제공하고, 기회를 제공하고, 서로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문화운동의 첩경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서로를 열고 모입니다. 저는 이 마을을 뼈를 묻을 곳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잘 살아서 부러운 마을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편한 사람들이 모여 아름답게 꾸려가는 마을로 부러움을 사고 싶습니다.”
[갑동 마을공동체 주민들]
◆ 이 글은 대전형 좋은마을만들기 우수사례집 '오손도손'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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