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제목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생존 항일 애국지사 이일남 옹
  • 담당부서 복지정책과
  • 작성일 2023-02-23

제104주년 3·1절을 앞두고 일본은 요란스레 다케시마의 날 기념행사를 열고, 서울 한복판에 일왕 나루히토의 생일 축하파티를 열며 일본국가 기미가요를 연주하는 등 국민감정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가온 3·1절은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으로 이룬 광복과 대한민국 발전의 참된 의미를 더욱 깊이 되새기게 만드는데요.

이장우 대전시장은 23일 우리시 유일의 생존 애국지사 이일남(97) 옹을 찾아가 헌신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23일 중구 문화동 이일남 애국지사 자택을 찾아가 감사인사를 올리는 이장우 대전시장
[23일 중구 문화동 이일남 애국지사 자택을 찾아가 감사인사를 올리는 이장우 대전시장]


항일 비밀결사 우리회 결성

“이일남 애국지사의 헌신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입니다!”

중구 문화동 이일남 애국지사 댁을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이 손모아 잡으며 인사드렸습니다.

일남 애국지사는 대전과 충남에서 유일한 생존 애국지사로, 부인 서채영(91) 여사와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23일 중구 문화동에서 이일남 애국지사, 부인 서채영 여사와 환담하는 이장우 대전시장
[23일 중구 문화동에서 이일남 애국지사, 부인 서채영 여사와 환담하는 이장우 대전시장]


이일남 애국지사의 독립운동은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주사범학교에 재학 중인 이일남 애국지사는 내선일체를 강요하며 민족말살정책을 획책하던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커가고 있었는데요.

교장이 ‘조센진(조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며 차별하는 등 횡포에 분개, 비밀결사 ‘우리회’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의 길에 나섰습니다.

독립전쟁에 뛰어든 이일남 애국지사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으고 이듬해 이를 독립군에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 만주를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결국 1945년 1월 발각, 일제 헌병에 체포 투옥된 후 장티푸스를 앓는 등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다행히 그해 해방을 맞으며 
이일남 애국지사는 8월 17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일남 애국지사의 모친이 일제 헌병대에 고초를 겪은 충격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본인 역시 악독한 고문 후유증을 지금도 다 씻기지 않는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이일남 애국지사는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 이일남 애국지사 판결문 보기


이일남 애국지사(오른쪽)와 부인 서채영 여사(왼쪽) 사진
[이일남 애국지사와 부인 서채영 여사 / 충남연구원 제공]


이후에도 이일남 애국지사는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친구들의 체포된 기록이 한국전쟁 당시 전주경찰서 화재로 소실되면서 유공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사비를 들여 관련 기록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조국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이일남 애국지사의 숭고한 헌신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열을 잊지 않고 예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존경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23일 중구 문화동에서 이일남 애국지사, 부인 서채영 여사와 환담하는 이장우 대전시장
[23일 중구 문화동에서 이일남 애국지사께 시민을 대표해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이장우 대전시장]

한편 현재 우리시에는 이일남 애국지사와 독립유공자 가족 220명이 거주하고 있고요.대전시는 이 분들에게 매년 보훈기념일 위문품, 보훈예우수당, 의료비, 제수비, 사망조의금, 가계지원비 등을 지급하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시 복지정책과(042-270-4642)로 문의하세요.

공공누리 제1유형

대전광역시가 창작한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생존 항일 애국지사 이일남 옹" 저작물은 "공공누리 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궁금하신 사항은 대전시 콜센터 042 - 120 으로 문의주시면 친절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