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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주말라이프]동춘당 마루에 걸터앉아 초연물외(超然物外)를 느끼세요
  • 담당부서 공보관
  • 작성일 2014-06-27

대덕구 송촌동에는 선비가 단정하게 앉아 책을 읽던 옛 집이 있습니다. 한걸음 뒤에서 그 처마를 바라보노라면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날개를 크게 펼쳐 훨훨 날아오를 듯 합니다.

 

동춘당 
[동춘당]


하늘이 푸르고 곱던 날, 17세기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송준길이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던 별당 ‘동춘당(同春堂, 보물 제209호)’입니다. 동춘당은 송준길의 아호이기도 합니다.

 

“동춘당을 들어설 때는 보통사람의 키보다 낮은 사주문을 지나야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절로 몸을 숙여 예를 갖추게 됩니다.”


조자은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잠시 전 들어왔던 그 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동춘당을 설명하는 조자은 문화해설사 
[동춘당을 설명하는 조자은 문화해설사]

 

듣고 나서야 당연하다 싶지만,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없었다면 깨닫지 못 했을 것입니다.


동춘당은 단아하고 절제된 건축미로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표본으로 손꼽힐 정도로 가치 있는 건물입니다.

 

동춘당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짜맞추기 방식으로 세워진 것이 특징인데요. 그 견고함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끄떡없이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짜맞추기 기법으로 지어진 동춘당 
[짜맞추기 기법으로 지어진 동춘당]


“끝이 사뿐하게 올라간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은 2칸으로, 남쪽을 향하고 있어요. 자세히 살펴보면 더 재밌습니다. 저기 추녀마루를 한번 올려다보세요.”

 

조자은 문화해설사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보니 쇠꼬챙이가 있습니다.

 

“들쇠입니다. 동춘당의 문은 사분합 ‘들어열개문’으로, 문 아래를 위로 들어 들쇠에 걸어 올리면 아무리 더운 날에도 부채 하나만 있으면 됐지요.”

 

동춘당의 들어열개문 
[동춘당의 들어열개문]


 

동춘당의 띠살문에는 햇살이 잘 들도록 창호가 발라져 있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옛 조상들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며 절로 감탄사가 나왔는데요. 이곳저곳 살펴보던 중 현판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이 현판은 송준길이 세상을 떠난 6년 후 동문수학했던 우암 송시열이 써 준 글씨입니다.

 

 

우암 송시열이 쓴 동춘당 현판 
[우암 송시열이 쓴 동춘당 현판]


“동춘당의 글씨가 유려하다면 우암의 글씨는 힘이 있었죠. 그래서 이 두 분의 글씨는 양송체라 불리며 명성을 떨쳤어요.”

 

동춘당(同春堂)은 ‘살아 움직이는 봄 같다’는 뜻입니다.

 

동춘당 내부를 살펴보다가 앙증맞은 창문에서 시선이 멈춥니다. 문을 열지 않고도 밖을 내다 볼 수 있게 만든 창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말로는 ‘눈곱재기창’이라고 부릅니다.

 

조자은 문화해설사가 대청마루를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갑니다.

 

동춘당 내부 
[동춘당 내부]


“대청마루 나무를 보세요. 모두 크기가 다른 나무판자를 엮은 데다 조금씩 틈새가 있어요. 날이 더워지면 나무도 팽창하며 부피가 늘어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동춘당의 외벽 왼쪽으로 돌아가다가 누군가 벽 아래의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굴뚝이에요. 보통의 굴뚝은 연기를 위로 보내지만, 동춘당은 아래로 나오게 했어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민초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동춘당 앞뜰로 돌아와 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초연물외(超然物外)’, 동춘당이 옥류각 아래 바윗돌에 새겨놓은 글귀로, ‘세속의 바깥에 있고, 인위적인 것을 벗어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과 자동차가 바쁘게 오가는 도심 속에서 있는 동춘당 그 자체가 ‘초연물외’가 아닐런지요.

 

 
[동춘당을 찾은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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