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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는 대통령, 그를 이용하는 각료, 그에 아부하는 제계, 제계를 위한 법을 만드는 정치권, 그 법을 근거로 갈취당하는 국민, 그래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어진 빈부격차…모든 것은 돈과 권력을 가진 그들만의 리그.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요.

이렇게 중요한 일을 대전이 해냈습니다.

1960년 3월 8일 대전의 학생과 시민이 불의에 항거하며 일어난 민주화운동, 3·8민주의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8일 대전고등학교 앞 도로에서 개최된  ‘3·8민주로’로 명명하는 제막식
[8일 대전고등학교 앞 도로에서 개최된  ‘3·8민주로’ 제막식]


독재타도 민주쟁취

해방 후 친일파를 대거 영입한 이승만 정권, 개 버릇 남 못준다고, 제 민족 제 나라 팔아먹던 인간들이 뭔들 제대로 했을까요.

고위직이나 하위직이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이에 더해 대통령 이승만은 정권연장에 최선을 다할 뿐이니 민생은 어렵고도 어려울 수밖에요.

그런 가운데 이승만 정권은 등 돌린 민심을 어설픈 부정선거로 털어내려는데, 그 꼴조차 막무가내여서 이미 선거 전부터 온갖 소문이 횡횡했습니다.

그래서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고등학생 500여 명이 부정선거에 반대하며 집회를 열었는데요.

이는 곧 경찰에 의해 와해되며 작은 데모대 사건으로 묻혀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3월 8일 대전지역 고등학생 1,600여 명이 도심에서 집회를 전개, 폭력경찰 진압에 맞서 투석전까지 전개하며 투쟁의 불씨를 살려 낸 것입니다.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독재에 항거한 38민주의거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독재에 항거한 3·8민주의거]


이렇게 다시 타오르게 된 민주화 열기는 곧이어 3월 15일 마산항쟁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 4·19혁명으로 폭발했는데요.

무차별 발포명령에도 피의 행진으로 맞서며 결국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켰습니다.


38민주의거


3·8민주의거 영원이 새긴다

대전시는 8일 대전고등학교 앞 도로를 ‘3·8민주로’로 명명하는 제막식을 거행했습니다.

‘3·8민주로’는 3·8민주의거 60주년을 맞아 당시 역사적 장소였던 대전고오거리에서 원동네거리까지 1.15㎞ 구간에 부여됐는데요. 명판 맞은편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대전시민의 민주화 공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대전시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3·8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코자 노력한 끝에 지난해 첫 행사를 치른바 있습니다.


38민주의거
[지난해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열린 3·8민주의거 첫 국가기념일 행사]


허태정 대전시장은 “3·8민주로는 대전시민의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 완성을 만든 자긍심이 될 것”이라며 “3·8민주의거가 계승되도록 기록물 간행, 기념관 건립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시 자치분권과(042-270-0551)로 문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