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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겨울방학 더 즐겁게!

11월 온리 대전! 대전 기네스 시리즈 엑스포과학공원 탑
유일한 대전과 만나라!
  • 송자대전판

남들 다 아는 관광명소는 지겹다? 오로지 대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하고 독특한 것들,
최초와 최고의 기네스 장소들을 매달 ‘온리대전’에서 소개합니다.

송자대전판
조선 대학자의 뜻이 새겨진 송자대전판

(사진_ 대전 동구청 홈페이지 (공공누리 제3유형) 자료- http://tour.donggu.go.kr/html/tour/cyber/cyber_02.html?mode=view&idx=8)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송자대전판은 조선 후기 유학자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의 문집 저서와 시문, 상소, 연보 등을 모아 만든 ‘송자대전(宋子大全)’의 목판활자입니다. 2019년 시작을 여는 1월의 온리대전에서는 송자대전판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우암 송시열선생은 누구인지, 그가 만든 남간정사는 무엇인지 이 모든 해답을 찾으러 대전 동구 가양동에 위치한 우암사적공원으로 떠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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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대전판
국내 최대 단일문집목판, 송자대전판

조선 후기의 문신, 유학자,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선생의 문집 저서와 시문, 상소, 연보 등을 모아 만든 ‘송자대전’의 목판활자입니다. 1795년(정조 20년) 정조의 왕명에 의해 간행된 송자대전은 송시열을 송자라 칭하며 국가적 차원의 성인으로 존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네요. 송자대전판은 국내 현존하는 최대 규모(5151매)의 단일문집목판으로, 현재 대전 동구 가양동 우암사적공원 내의 장판각에 보관돼 있으며,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송시열
조선 유학의 큰 스승, 송시열(1607-1689)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이나 이름이 등장하는 우암 송시열선생은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학자에게만 높여서 붙여지는 ‘자(子)’자를 붙여 조선의 학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송자(宋子)라는 칭호를 얻었단 겁니다. 중국 송대의 성리학자 회암 주희(晦庵 朱熹, 이하 주자朱子)의 학설을 계승하여, 조광조, 이이, 김장생으로 이어지는 조선 기호학파의 학통을 계승 발전시켰다고 하네요. 붕당정치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 좌의정까지 올랐던 송시열선생은 남인들에 의해 사약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되지만 후에 유교의 대가들만이 오른다는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전국 23개 서원에 제향 되었다고 합니다.
(사진_ 대전 동구청 홈페이지 (공공누리 제3유형) 자료-http://tour.donggu.go.kr/html/tour/cyber/cyber_02.html?mode=view&idx=8)

남간정사
성현의 뜻이 머물러있는 남간정사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남간정사는 송시열선생이 1683년(숙종 9년) 지은 서당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학문을 완성시켰던 곳이라고 하네요. 남간정사는 건축과 조경에 있어 독특한 점이 있답니다. 계곡에 있는 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 밑을 지나서 연못으로 흘러가게 한 것인데요. 한국 정원 조경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양식이라고 하네요. 한 폭의 수묵화가 떠오르는 남간정사와 잘 가꾸어진 연못, 일제 강점기 소제동에서 옮겨지은 기국정까지. 오랜 시간의 풍취가 감도는 우암사적공원에서 옛 성현의 뜻을 헤아려보는 건 어떨까요?

  • 위치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남간정사
  • 전화번호 042-673-9286
  • 담당부서 : 관광마케팅과
  • 담당자 : 이지현
  • 문의전화 : 042-270-3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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