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도로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노점상에 자그마한 좌판을 편 어르신의 손짓, 나보다 더 오래 이 세상과 마주해온 전신주, 골목길의 냄새. 두 발로 걸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있다. 도시철도를 타고 정거장에서 내려 만날 수 있는 각 역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나러 떠나보자.
선화동과 도청 뒤편 돌담길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선화동은 대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둔산 개발로 주요 행정기관들이 대거 옮겨가면서 원도심을 향한 사람들의 발길도 줄어들었다. 지금은 비어가는 공간에 빈티지한 느낌을 잘 살린 식당과 카페들이 자리하며 예술과 낭만이 흐르는 길이 되었다. 도시철도 중구청역 4번 출구로 나와 옛 도청 뒤편의 돌담길을 걸으며 근대로의 시간 여행을 해보자. 한때는 대전의 중심지였던 곳, 90년대 신도시 개발로 침체되었지만 다시금 사람들이 찾고 있는 이 길은 대전이라는 근대도시가 지나온 시간들이 스며있다.
옛 충남도청에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1896년 이후 충남도청은 공주에 위치했으며, 도청 건물은 옛 관찰사가 있었던 감영을 그대로 사용했다. 1905년 대전역, 신탄진역, 1911년 가수원역, 1914년 서대전역 등이 들어서면서 대전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것은 물론, 주변 도시를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도로 교통망이 구축되었다. 공주는 대전과 조치원 등 철도연선 도시들의 급속한 성장세에 밀려 1920년경에는 도청 주변을 제외하고는 적막한 도시가 되었고 1928년 도청 이전이 가시화되자 공주 지역주민의 반발은 커졌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대전으로의 도청 이전은 기정 사실화되었다. 공주 갑부 김갑순이 기부한 대전역으로부터 서쪽으로 500여m 위치한 곳 6,000평이 충남도청의 신축부지로 결정됐다. 1931년 6월에 착공해 1932년 8월에 준공했으며 1960년 2층 옥상에 한 층을 증축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2013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된 후 현재는 대전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비밀의 정원 ‘테미오래’와 벚꽃 동산 ‘테미고개’
옛 충남도지사 관사촌은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해 오면서 조성되었다. 도지사공관을 포함해 10동의 관사가 골목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전국에서 일제 강점기 관사촌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으로 당시의 관사촌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으로 피난 온 이승만 대통령은 충남도지사공관을 임시정부청사로 사용하였으며, 비밀리에 대전방송 관계자를 불러 6·27 특별방송을 내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2012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시는 충남도로부터 관사촌을 매입, 대대적인 수리와 복원 작업을 통해 산책로를 조성하고 비공개였던 9개 동을 공개했으며 2018년 시민 공모를 통해 관사촌의 새 이름을 테미오래로 정했다. 테미오래는 2019년부터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아늑한 비밀의 정원과 평화로운 산책로는 시민들의 힐링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테미고개 마을은 행정동으로는 대흥동에 속한다. 수도산을 꼭짓점으로 북쪽은 대고오거리, 남쪽으로는 보문산공원오거리, 서쪽은 테미삼거리로 이어지는 삼각뿔 모양의 지형을 하고 있다.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수도산은 1956년 이후 상수도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불리기 시작한 이름이다. 1955년 음용수 보안시설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수도산 내에는 무연고 묘지와 염소들이 있었는데 배수지가 이전하면서 1996년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지금은 벚꽃으로 유명한 수도산 테미공원이지만, 원래부터 벚꽃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산사태 방지용으로 주로 심었다는 오리봉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는데, 1971년에 기존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5년 된 벚나무를 일본에서 옮겨와 심었다고 한다.
아픈 현대사 간직한 ‘목동성당’과 ‘대전형무소터’
1919년 대전본당 설립으로 대전천주교가 시작되었다. 1927년 목동의 언덕에 건축된 성당에서는 호남선을 지나는 기차와 대전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전쟁 때 생긴 총탄과 핏자국을 가리려고 1956년 시멘트로 덧바른 뒤 페인트로 칠해 붉은 벽돌의 성당 벽체는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1971년 지금의 목동성당이 신축돼 본 성당은 현재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본원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전형무소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대전교도소로 그대로 사용되다가 1984년 유성구 현 위치로 이전했다. 따라서 현재는 수감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졌던 4개의 망루 중 한 동의 망루와 이제는 쓰지 않는 우물만이 철거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