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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칼럼 <망각 일기>

2023.03
  • 등록일 : 2023-02-24
  • 조회수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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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기억과 망각에 대한 딜레마의 기록


<망각 일기>는 짧다. 짧지만 강렬하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사실 책의 제목에 ‘일기’가 들어가지만 엄밀히 말해 이 책은 일기는 아니다. 일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드러난 기억과 망각에 관한 치열한 삶의 기록이다. 시와 소설을 쓰며 회고록 작가로 살아온 세라 망 구소는 25년 동안 매일 일기를 썼다. 그녀는 모든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일기장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빈틈없이 기록하고 싶어서 일기를 계속 썼다. 매 순간이 감당하기 벅찬 하루의 삶을 보듬고 회복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일기는 어느덧 하루의 필수 일과가 되었다. 일기를 매일 쓰는 데 부담 을 느끼는 이들에게 저자는 “운동을 하거나 돈이 되는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 나는 일기를 쓸 따름”이라며 자신은 오히려 일기를 쓰지 않는 편이 더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일기를 쓰는 동안 세월이 흘러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를 키우며 종종 깜빡하는 일도 생기고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오 는 경험도 한다. 삶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잊고 싶은 기억을 선별하려던 저자는 결국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려 해도 그 사이에는 빈틈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녀의 일기는 기억을 위한 필사적인 도구에서 망각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그 때 비로소 그녀는 기억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삶의 여유를 찾는다. 일기가 자신이 잊은 순간의 모음집이며 불완전한 것이 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책의 말미에 저자는 “이제 나는 망각이 내가 삶에 지속적으로 관여한 대가임을, 시간에 무심한 어떤 힘의 영향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흔히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기록된 삶만큼 기록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 순간 들 역시 삶의 일부이다. 망각일기를 통해 망구소는 삶은 완전하지 않은 기억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우리를 다독인다. 삶은 기록하고 기억하지 못 한 순간에도 계속되며, 때론 우리가 기록하지 못 한 어느 순간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이용주(우분투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