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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정한 클래식] 브루흐 ‘콜 니드라이’

2022.11
  • 등록일 : 2022-10-26
  • 조회수 : 28

첼로가 들려주는 고백 그리고 평안



‘음악은 상처 입은 마음에 대한 약이다.’- 알프레드 윌리엄 헌트 (Alfred william Hunt, 영국 화가)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 살다 보면 누구나 절대적인 존재에게 기대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들이 찾아온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음악은 조용히 다가와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 독일의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다.


‘콜 니드라이’는 ‘신의 날’이란 뜻이다. 유대교에는 일 년에 단 하루 ‘욤 키푸르’라 불리는 대속죄일이 있다. 이날은 대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동시에 성도들도 자신이 지키지 못한 ‘모든 서약들’을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날이기도 하다. 


이 예배에서 부르는 특별한 성가의 이름이 바로 ‘콜 느드레(모든 서약들)’이다.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는 이 ‘콜 느드레’를 일종의 환상곡 형식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히브리 선율에 의한 첼로, 관현악, 하프를 위한 아다지오 Op.47’이란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대교의 선율을 사용해 곡을 작곡했으니 브루흐를 유대인, 혹은 유대교 신자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신실한 독일 루터파 신앙인이었다. 그가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것은 자신이 지휘하는 합창단의 유대인 단원이 이 멜로디를 소개해주며 작곡을 권했기 때문이다. 


곡은 발표와 동시에 큰 성공을 거뒀지만, 유대교의 선율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브루흐는 조국 독일에서 배척당하는 작곡가가 됐다.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의 음악을 따른다는 이유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는데, 유대교 선율을 사용한 ‘콜 니드라이’까지 큰 성공을 거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 브루흐가 세상을 떠난 뒤 들어선 나치 정권은 10여 년간 독일에서 그의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곡은 크게 2부로 나뉘어진다. 1부 ‘Adagio ma non Troppo(천천히,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는 보다 종교적이고 엄숙하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먼저 시작되고 이내 장중한 첼로의 선율이 등장하는데, 마치 한 인간이 신께 기도를 올리는 듯 절절한 선율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음악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2부 ‘Un poco piu Animato(조금 더 생기있게)’로 넘어간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하프의 선율, 그 위에 유려하고 낭만적인 첼로의 음색이 얹어지며 기도를 마친 한 인간의 평온한 마음을 그리는 듯하다.


신을 향한 인간의 고백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었을까. 브루흐는 이 곡의 독주 악기로 인간의 음성과 가장 닮아있다는 첼로를 선택했다. 히브리 성가 선율을 토대로 작곡된 첼로의 엄숙한 선율은 성스러운 분위기의 오케스트라 선율과 합쳐져 곡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믿는다. 아무리 힘든 시간, 힘든 일이라도 지나고 떠올려보면 그럴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렇게 될 일이었다. 오늘의 아픔도 결국 가볍게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있기에 이 아픔의 시간은 더 짧아질 것이다.


글 김기홍 |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