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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와 과학 ] 모기와 춤을

2022.09
  • 등록일 : 2022-08-24
  • 조회수 : 55

베 이불을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 어느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머리처럼 돼버리고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 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그는 이미 가고 없어 싸워봐야 소용없고 잠만 공연히 못 자기에 여름밤이 지루하기 일 년과 맞먹네 - 다산 정약용의 시 증문(憎蚊, 얄미운 모기) 중 일부


처서가 지나면 한여름 패악질을 일삼던 모기 주둥 이도 비뚤어진다고 하지만 난방이 잘되는 대도시 에서는 한겨울에도 어렵지 않게 모기를 찾아볼 수 있다. 아니 한겨울에도 모기에 시달릴 수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만든 변화에 모기가 인간보다 더 빨리 적응하고 있다는 좀 섬뜩 한 방증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모기의 해악은 정약용의 표현대로 얄미 운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빌 게이츠 재단은 매년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동물들의 순위를 매겨 발 표하는데, 비교할만한 상대 없이 단연 1등은 모기 이다. 2000년 이후만 해도 한 해 평균 2백만 명 이 상의 목숨을 앗아간 주인공이 모기이다. 2등은 인 간으로, 평균 50만 명이 인간 스스로에게 죽임을 당해 2등에 올랐다. 지구상에서 공식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이즈음의 수치는 더 오를 것이다. 3등은 뱀으로 평균 5만 명의 인간을 해치고 있다. 살인자 모기는 사람을 직접 죽이는 대신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과 같은 자신이 옮기는 질병을 통해 사람을 죽이고 또 고통 속에 빠뜨린다. ‘애앵’하는 모기소리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모두가 본능적 으로 싫어한다. 이는 공룡을 포함해서 지구상에서 생명활동을 한 거의 모든 육상동물들이 모기에게 시달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 연구는 인류가 지 구상에 출현하고 20만 년 동안 살았던 1,080억 명 의 인류 중 약 520억 명이 모기로 인해 목숨을 잃 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모기> 5쪽 티모시 C. 와 인가드 지음, 커넥팅 출판)

모기가 가진 이런 위력은 인류 문명에도 큰 영향을 끼쳐왔다. 거의 모든 전쟁의 현장에는 모기 군단이 진을 치고 있었고 이에 대비하지 못한 군대는 전투력과 상관없이 패배했다. 모 기에 의한 학살의 현장이라 할 전투도 많았다. 이 때문에 제국이 몰락하고 또 새로운 국가 가 성장해 패권을 쥐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모기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최근 살충제의 개발로 모기의 학살이 주춤하기는 했지만,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로 인해 더 넓은 지역으로, 더 높은 지역까지 모기는 새롭게 적응하며 각종 질병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쯤 되면 인간의 역사를 모기와 치르는 전쟁의 과정이라 하더라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인간도 끊임없이 모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왔다. 연기로 모기를 쫓는 모깃불 에서 바르는 기피제, 그리고 살충제까지. 그중 가장 최신 무기는 생명공학적 방법이다. 최근 미국과 브라질 등에서는 뎅기열을 일으키는 이집트숲모기의 수컷에 유전자 변형을 가 해 대량으로 방사했다. 이 수컷 모기와 짝짓기로 태어난 알은 성충으로 부화하지 못하고 죽 어버림으로써 자손 모기가 성장할 수 없다. 그 결과 지역의 모기 개체수를 90% 이상 줄이 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단점이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불임이 된 수컷도 수명을 다하고 죽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결국 매년 수컷 모기를 방사해야 효과를 지속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퍼 유전자가 위를 이용한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이 활용된다. ‘유전자가위’를 아예 모기 유전자에 심는 것이다. 유전자가위는 세포 속 DNA의 염기 서열 중 원하는 부위를 자르고 편집하는 기술이다. 특 정한 염기 서열을 찾아 결합하는 ‘가이드 RNA’와 염기 서열을 자르는 가위 역할을 하는 ‘Cas9효소’로 구성된 것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이다. 수컷 모기의 불임 유전자가 있는 염 기 서열에 유전자가위를 함께 심어두면 교배 후 불임 유전자를 이기려는 대립유전자를 만 날 경우 이를 유전자가위가 잘라내 버려 불임 유전자만이 후손으로 유전된다. 이론적으로 보면 모기라는 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도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생태계를 이루는 하나의 종을 완전히 멸종시킬 권리가 인간에게 있을까? 모기 유충 인 장구벌레는 수많은 생명체의 먹이인 데다 모기가 많은 식물의 꽃가루를 옮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생물종의 멸종이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 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결론이라면 우리 인간은 생태계 안에서 모기와도 함께 춤을 추어야 한다. 다만 멀리서 서로 접촉하지 않고 추는 춤이면 어떨까?

김병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