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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야기

계수나무 향기는 가을 바람에 날리고

2022.11
  • 등록일 : 2022-10-25
  • 조회수 : 232

대전 도심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로수들이 여름에는 그늘을, 봄 가을에는 멋진풍경을 선사하며 서 있다. 평소 무심히 지나던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자.



가로수는 우리가 가장 쉽게 만나는 나무들이다. 가로수는 자동차 배기가스의 흡착과 대기오염을 완화시켜준다. 나뭇잎은 그늘을 만들고 소음을 막아준다. 


증산작용으로 도시 온도를 낮춰준다. 도로와 생활공간을 분리하여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든다.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열매를 맺어 도시의 경관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지만 시련을 겪는 가로수도 많다. 꽃가루 날린다고, 간판이나 햇빛을 가린다고, 전선에 걸리고 걷기 불편하다는 등의 갖가지 이유로 베어진다. 


때로는 열매에서 냄새가 난다고 있던 곳에서 살지 못하고 옮겨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과도한 가지치기로 몸통만 남아 저러다 죽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가로수도 있다.

 


그래도 도심의 가로수는 꼭 필요하다. 피해보다는 이로움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또한 독창적이고 잘 가꾸어진 가로수는 축제를 만들고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성의 이팝나무 가로수다. 이팝나무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인데, 이는 ‘하얀 눈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얀 쌀밥을 연상하여 이팝나무라고 하였다. 


서양에서는 눈꽃으로 보이는 나무가 우리에게는 흰쌀밥으로 보이는 시각차가 재미있다. 흰쌀밥을 실컷 먹어보고픈 소망의 반영 아니었을까? 


유성에서는 이팝나무꽃이 피는 5월에 맞춰 온천문화축제를 연다. 그러면 온천 거리는 온통 흰 눈이 내리는 거리로 변한다. 5월 어느 날 온천수의 족욕장에서 족욕을 하며 눈을 돌렸다가 함박눈이 쏟아지는 한겨울인 듯 잠시 착각한 적도 있다. 


온천문화축제가 유명하게 된 것은 이팝나무라는 가로수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온천문화축제가 아니라 유성의 이팝나무 축제로 알 정도이다. 이렇듯 가로수가 지역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색적인 가로수길도 있다. 테미고개에 가면 우리가 보기 쉽지 않은 나무들이 가로수로 서 있다. 아카시아 나무와 혼동하기 쉬운 회화나무이다. 회화나무는 선비 나무라고 한다. 


옛 선비들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갈 때면 마을 입구에 먼저 회화나무를 심어 관직에서 물러났어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는 선비임을 만천하에 천명했다. 더불어 뒷산에는 기름을 짤 수 있는 쉬나무를 심었다. 


불을 밝히고 글을 읽는 것을 자랑으로 삼기 위해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학자수(學者樹)’라 부른다. 테미고개에는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것일까? 


동대전로인 대동오거리에서 우송대학교 가는 길에도 이색적인 나무가 있다. 계수나무다.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반달’이라는 동요에 나오는 계수나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계수나무는 꽃보다는 향기로 유명하다. 계수나무는 초록잎보다는 10월 이파리가 노랗게 되었을 때 향기가 짙어진다. 잎 속에 있는 탄수화물의 일종인 엿당의 함량이 높아지면서 기공을 통해 달콤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계수나무를 ‘연향수(連香樹)’라고 한다. 계수나무 잎이 떨어질 때쯤 우송대학교 앞길을 걸어볼 일이다. 발끝에 계수나무 잎이 치일 때마다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쳐 미소가 절로 지어질 것이다. 


대전시청 북문과 충남대학교 정문 앞길에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멋지게 펼쳐진다. 현재 메타세쿼이아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 


전 세계에 세쿼이아는 세 종류가 있다. 메타세쿼이아는 미국에 있는 두 종류의 세쿼이아보다 늦게 발견되었다. 그래서 메타가 붙어 ‘뒤에 발견된 세쿼이아’란 뜻을 담고 있다. 


세쿼이아는 본래 사람 이름으로 1761년 미국에서 태어난 체로키족 인디언 전사였다. 그는 글자 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느끼고 체로키족의 문자를 창제한 우리나라 세종대왕과 같은 분이다. 지금도 체로키족은 세쿼이아가 만든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세쿼이아는 인디언들이 미국에서 당한 고난과 나라 없는 민족의 슬픔이 어떠한지를 몸으로 뼈저리게 느끼며 1843년 눈을 감았다. 체로키족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나무에 붙였다. 앞으로 메타세쿼이아를 만나게 된다면 위대했던 한 인디언을 생각해도 좋겠다. 


이렇듯 나무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가로수 길을 걷는다면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이창남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