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흑석동 ‘노루벌’
산과 하천으로 둘러싸인 곳엔 생명이 꿈틀댄다. 서구 흑석동에 위치한 노루벌은 아홉 개의 작은 봉우리를 가진 구봉산과 대전의 허파인 갑천이 감싸 안은 드넓은 벌판이다. 아기 노루가 머물며 쉬었다는 이름처럼, 이 너른 벌판에선 도심의 빠른 속도가 자연의 느릿한 시간으로 흘러 나간다. 대전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숲과 강, 동물과 식물의 어울림이 만들어 내는 푸른 에너지를 가득 채워간다. 노루벌은 삶에 지친 인간에게 광활한 자연이 내어주는 쉼과 여유의 공간이다.
천연기념물이 사는 천혜의 자연
노루벌은 풍부한 생태 자원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대전의 대표 청정지역이다. 오랜 세월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유지, 보존되고 있어 ‘살기 좋은 지역자원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 에는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와 수달을 비롯해 토종 민물고기, 철새 등이 살고 있고 메타세쿼이아, 구절초 군락과 우리나라 고유종이자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인 미선나무가 자라고 있다. 특히 노루벌은 고운문산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 우리나라 반딧불이 3종이 모두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이 일대가 반딧불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노루벌의 생태학적 가치가 높아지며 지난 2021년에는 ‘노루벌적 십자생태원’이 개원했다. 생태원은 노루벌의 산림자원을 활용해 시민들에게 휴식과 심신의 안정을 채워주는 힐링 공간이다. 유아 환경교육관에서는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풍부한 감성과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맑고 깨끗한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자연친화적 놀이시설인 유아숲체험원, 숲놀이터 등을 조성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즐기는 법을 일러준다.
접근성 좋은 캠핑의 성지로 인기
노루벌은 역사, 문화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조선의 성리학자였던 권순경과 그의 문중 후손들이 남긴 유물들이 보관돼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상, 제례에 대해 정리하고 기록한 ‘상제집략 판목’(대전시 유형문화재 제21호)과 역사, 민속, 문예, 교육, 효사상에 관한 내용이 담긴 ‘용천련고 판목’(대전시 유형문화재 제22호) 등 귀중한 문화 유산들로 현재는 대전시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지난 3월에는 노루벌 인근에 충청권역 유물창고 ‘예담고’가 개소했다. 과거 호남선 기차가 지나던 사진포 터널을 활용해 만든 곳으로 충청권에서 발굴된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관 및 관리하는 곳이다.
노루벌은 최근 전국 캠핑족들에게 캠핑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도심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바닥이 자갈과 모래로 먼지가 날리지 않아, 그동안 일부 동호인들에게만 알려진 노지 캠핑장이었다. 그러나 몇 년새 국내 캠핑 붐이 일면서 입소문을 탔고, 현재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가족 단위 캠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대전의 대표적인 캠핑지로 자리잡았다. 다만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며 일부 캠핑족들 의 장기 텐트 설치 및 방치로 자연경관이 훼손되고, 시민들의 불편이 높아지고 있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글 강병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