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각장애인 13인의 이야기 담긴 <어둠도 빛이더라>
아침을 먹으면서 사위와 대화를 하는데 큰 손자가 꿈에 대해서 말을 한다. 녀석이 자기의 꿈은 유튜버라고 하면서 뜻밖에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꿈은 뭐예요?” 손자녀석의 느닷없는 질문에 순간 당황해 머뭇거리게 되었다. 나는 너무 오래 살아서 꿈이 사라졌다고 둘러대고 말았다. 정말 나의 꿈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나의 꿈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니, 꿈이라는 걸 꾼 적이나 있었을까? 시각장애인이 된 뒤로 모든 게 송두리째 무너져버렸을 때 꿈도 덩달아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지. - 박정선 ‘어린 손자의 질문’ 중에서
대전지역 여성 시각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소박하지만 진솔한 마음을 적어 내려간 수필집을 발간했다. 시각장 애인여성연합회 대전지부는 11월 29일 대전시립산성 종합복지관 강당에서 <어둠도 빛이더라> 출판기념회를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수필집은 지난 3년간 진행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나도 작가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글쓰기를 익혀온 13명의 여성 시각장애인의 글들 을 묶은 것으로 총 50편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들이 수 록되어 있다. 이들은 사회의 편견이나 선입견에 맞서 살아온 과정, 자녀의 양육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가족과 사회와의 관 계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오 면서 느낀 아픔과 슬픔 등을 소박하지만 진솔한 언어들 로 풀어냈다. 49세에 망막색소 침착으로 1급 시각장애인이 된 구관 년 씨는 ‘시골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는 대문 앞에서 손짓하며 어서 들어와 밥 먹으라고 하였다. 밥 상에 앉으면 무뚝뚝한 분이지만 소 돌본다고 고생했 다, 밥 많이 먹으라고 하였다. 우렁이 잡느라, 헤엄치느 라고 학교에 가지 않은 일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했다.
선천성 시각장애 1 급인 채수분 씨는 “그때 내 나이가 10살이었다. 누구 도 나보고 소경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아서 내가 시각장 애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부모님은 다른 형제들하고 나를 똑같이 키웠다. 그때만 하더라도 빛은 조금 보였 기 때문에 시야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남 들도 나와 같은 줄만 알았다”는 내용의 ‘사랑의 상처를 꿰매고’를 책에 담았다. 이들의 글쓰기 수업을 지도했던 김태열 지도강사(수필 가)는 “단단한 관념의 벽을 뚫고 마음속 기억의 창고를 더듬어서 건져 올린 그녀들의 이야기가 낯설거나 소소 할 수 있지만 온몸으로 부딪히며 쓴 그녀들의 글은 세 상의 거친 바람에 숨죽이며 맞선 들꽃의 소리”라고 응 원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