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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당신의 이름에 꽃이 피었습니다”

2022.12
  • 등록일 : 2022-11-25
  • 조회수 : 721

15년째 암병동에서 이름꽃 그림 봉사 박석신 화가


“이름을 모를 때는 잡초이지만, 이름을 알면 꽃이 됩니다. 

우리는 잡초가 아니라 나만의 이름을 가진 꽃입니다. 그 이름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이름꽃 화가, 대청호 화가, 농사짓는 화가, 콘서트하는 화가…. 박석신 화가를 부르는 말은 다양하다. 오랜 시간 TJB 대전방송 ‘화첩기행’과 KBS ‘영상앨범 산’에 출연한 방송인이자, 목원대에서는 교양학부 수업을 하고, 대흥동의 복합문화공간 ‘꼬씨꼬씨’도 운영한다. 박 화가는 스스로를 ‘잡것’이라 칭한다. 자신을 ‘잡놈’이라 인정하는 순간 순종이 갖지 못하는 생명력과 자유를 얻었다. 잡초, 잡동사니…. ‘잡’이란 글자는 ‘쓸모없음’을 뜻하는 듯하지만, 뒤집어 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의 예술도 한마디로 ‘잡종’이다. 가수 정진채 씨 등 재주 많은 동료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로 진행하는 ‘드로잉 콘서트’를 비롯해 대청호변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장작패러데이’, ‘마을에서 밥짓기’ 등이 대표적이다. 박 화가가 있는 곳은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된다. “1,000명의 이름을 그리면 1,000개의 인생이 있어요. 똑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이름꽃을 통해 한 명의 인생을 만나고, 그림 아래 제 이름 ‘석신’을 쓰며 제 인생도 함께 나눕니다.” 2007년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이름꽃 그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학교와 병원, 콘서트 현장에서 시와 서예와 그림을 한 폭에 담은 이름꽃 그림을 그리며 수많은 삶을 만났다. 그래서 이름꽃을 그리며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의사, 간호사분들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지만, 환자들의 마음까지 회복시키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의료진의 손이 닿기 어려운 마음을 예술로 어루만지고 싶었습니다.” 박 화가는 가슴 아픈 사연으로 암 병동을 찾았다가 환자와 그 가족들의 슬픔을 나누고자 시작한 이름꽃 그림 봉사활동을 15년째 지속하고 있다. ‘드로잉콘서트’ 현장에서도 그림과 음악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본 많은 사람들이 펑펑 울곤 한다. 삶에서 물질로 채

워지지 않은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다. 그가 병원 봉사만큼 애정을 갖는 프로젝트는 시골 마을회관으로 찾아가는 ‘엄마의 이름을 그려 드립니다’ 이다. 현재 80~90세 어르신들은 딸이라는 이유로 ‘끝순이’, ‘말자’와 같은 이름을 얻기 십상이었다. 그마저도 결혼 후엔 이름 대신 누구 엄마, 무슨 댁, 누구 할머니로 불리는 삶을 살았다. 박 화가는 “이름이 창피해서 알려줄 수 없다고 하시던 어르신들도 완성된 그림을 보면 ‘내 이름에도 꽃이 들어 있다’며 뭉클해 하세요. 자녀들도 엄마의 이름꽃 그림을 보며 눈물짓는 경우가 많고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에서, 엄마의 이름에서 지나온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름꽃 그림 속 한 구절의 시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반추하는 거울이자,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밝히는 작은 등대가 될 수도 있기에 그 또한 가벼운 마음일 수 없다. 언제나 삶의 현장에서, 예술가의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 박 화가는 “꿈을 찾는 과정은 직업이 아닌 삶의 가치를 찾는 여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앞으로도 “교육 현장은 물론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예술을 통해 변화의 씨앗을 나누고 싶다”며 “직업을 꿈꾸는 대신 각자가 스스로 지을 수 있는 것 ‘세 가지’를 갖자”고 제안했다. “농사짓고, 옷을 짓는 건 직접 못하더라도 모두가 웃음을 짓고, 밥을 짓고, 시를 지을 수 있어요. 손수 지을 수 있는 게 늘어날수록 삶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저는 텃밭을 짓기 시작하면서 환경을 생각하고, 기후와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됐어요.” ‘짓기’는 삶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시도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통해 삶은 나다워지고, 보다 풍요로워진다.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것은 재산이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가치이다. 그것이 우리의 자산이 되고 역사가 된다.올 한해 ‘내 이름은 꽃이다’ 프로젝트로 대전 원도심 문화활동을 이끌고, 저서 <당신의 이름이 꽃입니다>를 펴내며 독자들과 소통해온 박 화가는 내년 시민들과 더 가까이서 호흡하기 위해 대청호에 ‘이름꽃 미술관’을 짓고 있다. 그가 <대전이즈유> 독자들에게 조금 이른 새해인사를 건넸다. “나다운 사람이 되세요.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세요!” 


지나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