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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작고 느리지만 같이 오래 가실래요?"

2022.10
  • 등록일 : 2022-09-26
  • 조회수 : 370


패트릭 라이든·강수희 씨 부부

더 많이 소유하고 갈수록 더 많이 소비하며, 또 그 것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린 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늘 쫓기듯 살아가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돈을 벌고 환경은, 자연은 망가지고 있다.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서울에서, 그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각각 직 장인으로 살아가던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비 슷한 고민을 했고 다른 가능성을 찾고 싶어 했다. 2011년 직장을 그만두고 아시아 여행길에 오른 미국인 남자는 여행자 커뮤니티를 통해 우연히 여 행 안내자로 한국인 여자를 만났다.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해왔던 비슷한 이야기들을 풀어놓 기 시작했다.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며 이로운 삶’ 에 관한 생각을 활발히 나누었던 둘은 강원도 홍 천의 최성현 씨 농장을 찾았고 이후 그들이 고민 해왔던 수많은 사회적·생태적 문제의 해답을 ‘자 연농’에서 찾기 시작했다. 4년 여의 시간 동안 기 획과 취재, 촬영, 편집 등 낯설기만 한 모든 과정 을 스스로 공부해가며 한국과 일본, 미국의 자연 농 농부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자연농’ 을 제작했다.

<허벌리스트로 활동하는 강수희 씨가 직접 재배한 허브로 만든 차>

소유하고 소비하는 삶 고민하던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

한국과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비슷하게 고민해왔던 강수희 씨와 패트릭 라이든(Patrick M. Lydon)씨는 중구 석교동에서 살며 자연농을 실천하고 있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더 정확하게는 자연 농을 도시의 삶 속에 적용해 실천하고, 이웃들에게 영 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의 환경책 전문 출판사 에서 일하며 생태, 농사, 환경문제에 귀 기울여왔던 수 희 씨는 현재 일상에서 쉽게 식물의 이로움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허벌리스트로, 디자인과 사 진을 전공한 후 실리콘밸리의 IT업체에서 기술작가로 일했던 패트릭 씨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는 생태예술가로서, 사진과 영상, 설치미술, 글쓰기, 퍼포 먼스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관 한 생각을 전달한다. 또 둘은 다큐를 제작한 작가이자 감독으로 생태환경에 관심이 있는 전국의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있다.

일본의 오사카에서 생태·예술·커뮤니티 공간인 ‘The Branch’를 운영하며 3년 정도 살다가 2020년 한국으 로 들어온 부부는 부산, 구례를 거쳐 지난해 4월 말 이 곳 석교동에 정착했다. 수희 씨는 “대덕연구단지에 근 무했던 아버지 덕분에 초등 입학부터 고2까지 대전에 서 지내 나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고 친구들도 많다.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대동 작은집에서 지 냈던 경험도 나와 패트릭에게는 좋은 기억”이라고 했 다. 또 이들은 “대전은 큰 도시이지만 오래된 추억 같은 풍경이 있고 물가가 싸고 편안하다. 대전천과 갑천, 유 등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 어디든 쉽게 도착할 수 있 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부부가 가꾸는 중구 석교동 자택의 옥상정원>

다큐 제작과 책 발간으로 ‘자연농’ 가치 전파

이들은 자연농에 대해 농사방식인 동시에 세상을 바라 보는 방식이자 삶에 대한 태도라고 설명한다. 부부는 “자연농은 이거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다큐 에 담긴 자연농의 개념은 자연에 답하며 자연을 따르 며 사는 것, 자연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들과 공감하며 보다 건강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큐멘터리에서 농부 가와구치 요시카즈 씨는 “세상 어 디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연농의 기본 법칙은 땅을 갈지 않고 풀과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비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질과 기후, 작물의 성질에 따라 자 연스레 맞추어 가면 된다. 이렇게 따르는 법을 잘 익히 면 세상 어디에서든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부부는 자연농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진다면 좋겠다 는 바람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다큐가 완성된 2015년 가을 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상영회를 열었다. 그리고 2017년엔 자 연농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자세하게 담은 책 <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를 펴내기도 했다. 이들은 ‘자연농 자체는 훌륭한 얘기이지만 현실적이지 않고 생 계유지는 불가능하며 전 세계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지금 짜여 있는, 이 자본주의적 사 고방식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절벽을 향해 달 려가고 있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달리는 기차’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수희 씨는 “현재의 시스템을 달리는 기차라고 보자. 안락한 기차 안에서 편안하게 맛있는 간식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여정일 것이나, 문제는 기차가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 다. 기후변화, 환경오염, 자원고갈, 사회적·경제적 불평등과 이로 인한 갈등, 테러와 전쟁의 위험 등 이 시스템은 심각한 위기를 겪 고 있다. 기차 안에서는 절대로 자연농을 실천할 수 없다. 우리가 만나온 자연농 농부들은 모두 기차에서 내려 주어진 틀을 거부하 고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었다”고 했다.

<이들 부부가 꾸려가는 생태예술창작 그룹인 ‘시티애즈네이처’는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전시에 참가했다. 전시장소는 동구 정동 ‘구석으로부터’로, 10월 16일까지 계속된다.>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에 생태예술로 참가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 부부는 ‘일상에서의 자연농’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이나 생협, 혹은 지역상 점, 직거래장터를 이용한다. 농부와 직거래를 이어간다면, 대형마 트가 돈을 끌어모으는 대신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농부가 힘을 얻 는다. 대기업에서,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 대신 지역의 수공예가가 만든 것을 사고, 재활용가게에서 구해보거나, 혹은 직 접 만드는 방법도 있다. 어떤 물건이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공유 할 수 있는가, 고치거나 직접 만들 수 있는가, 더 건강한 방식은 없는가, 정말로 필요한가를 질문한다”고 했다. 배달음식이나 페 트병은 이용하지 않는 등 쓰레기를 덜 만들기 위한 실천은 이미 익숙한 일들이다. 실제로 이들 집은 솜씨 좋고 목공일을 즐겨하는 패트릭 씨가 버려진 재료들로 직접 만든 테이블과 의자, 선반 등 으로 꾸며져 있고 생활용품들은 재활용가게나 중고거래를 통해 구입하거나 얻어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최근 대전시립미술관의 기획전인 대전과학예 술비엔날레 ‘미래도시’의 ‘시티 프로젝트’(~10.16)에 생태예술창작그룹인 ‘시티애즈네이처’ 이름으로 참가, ‘나무가 디자인하는 도시’라는 작업을 복합문화예술공 간인 ‘구석으로부터’(동구 중앙로203번길 88-1(정동)) 에서 선보이고 있다. 생태예술가로 활동하는 패트릭으 로서는 처음으로 대전시민들과 생태예술을 매개로 만 나는 자리이자, 이들의 자연농 철학을 녹여낸 전시장이 기도 하다. ‘나무가 디자인하는 도시’는 과학과 예술, 디자인과 기 술, 음악과 퍼포먼스를 한데 엮은 작업이다. 패트릭은 “숲은 기후변화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고 인간이 더욱 건 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만약 인간이 나무들 의 지혜에 귀 기울이며 그것을 도시에 반영한다면 도시 는 어떤 풍경으로 바뀌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작업이 시 작된다”고 소개했다. 부부는 오래도록 대전에 살며 이웃들과 함께 새로운 시 스템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곳곳에 뿌리내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 기차에 머물면서 더 크고, 빠르고, 경쟁적이고, 집 중적이며, 전 세계적이고, 무한성장을 향한, 정당하지 않은, 불평등한 길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 차에서 내려 소규모의, 느린, 협동적인, 재생시키는, 지 역 규모의, 공유 기반의, 정직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의 길을 향해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다큐멘터리 ‘자연농’은 포털에서 다큐 자연농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고 유튜브 ‘시티애즈 네이처’ 채널에서는 20분 축약본을 비롯해 또다른 영상들을 볼 수 있다.

허용주 사진 최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