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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우리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2022.08
  • 등록일 : 2022-07-28
  • 조회수 : 603

신지은(청주시 흥덕구 사운로)

할머니께서 자주 쓰시는 말씀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됐다”, “돈 쓰지 마라”, “너희들이나 다녀와라” 등. 어려운 형편에 평 생 일만 하며 자식들을 키워오신 터라 절약은 몸에 배어 있었 고 누리거나 즐기는 삶과는 거리가 먼 채 한평생을 살아오셨 다. 그러던 할머니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 한 2년쯤 된 듯싶다. 할머니 댁에 방문하면 늘 조용하기만 하던 집안에 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TV를 골똘히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노래를 따라부르며 흥얼거리는 할머니는 낯설기까 지 했다. 임영웅의 노래를 외우는 것은 기본, 몇 살인지, 키는 몇인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이 자리에 왔는지 등등 임영웅에 대해서 는 모르는 게 없으셨다. 요즘 아이돌 팬덤문화 못지않은 관심 과 열정이었다. 지난 7월 초 대전에서 임영웅의 콘서트가 열린 다는 소식에 일찌감치 예매해 할머니 손에 티켓을 드릴 수 있 었다. 할머니는 “왜 그런 데에 돈을 쓰냐”고 말씀하셨지만 못 이기는 척 공연장으로 향하셨다. 

공연이 끝나고 만난 할머니의 얼굴은 무척 상기되어 있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볼 은 발그레했다. 할머니의 인생에서 어느 순간이 이러했을까? 첫사랑이 이러했을까? 차를 타시자마자 “그런 봉이 있는 줄 알았으면 하나 사 갖고 들 어갈 걸 그랬네. 흔들게 없어서 열심히 손뼉만 쳤어”라고 말씀 하셨다. 무려 5만 원이나 한다는 야광 응원봉을 말씀하신 거였 다. 수십 년간 꼭 닫혔던 입술이 열린 날인 듯했다. “일어나라 고 하면 일어나고 박수도 엄청 쳤어. 노래도 크게 따라 부르고. 안그래도 콘서트를 하면 한 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손녀 덕분에 진짜 좋은 구경 했 어. 정말 즐거웠어. 고마워.” 할머니는 행복해 보였다. 할머 니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가슴 뛰는 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