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전경
와당
발굴전경
(국립공주박물관 소장품)
고려 초기 대전은 진잠현, 유성현, 덕진현, 회덕군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들 군현은 고려시대 통치 제도하에서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현으로 공주목에 속해있었다. 진잠현은 현재의 유성구 교촌동 일대이며, 유성현은 서구 월평동과 유성구 상대동 일대이다. 덕진현은 유성구 덕진동 일대, 회덕군은 비풍군에서 개칭된 명칭이며 대덕구 읍내동 일대가 그 중심지였다. 덕진현은 현종 9년 속현의 지위를 상실하고 공주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속군․현 외에도 대전 지역 내에는 망이 망소이의 난으로 알려진 명학소를 비롯한 7개의 소와 미화부곡 등 3개의 부곡이 있었다.
무신난 이후의 농민봉기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1176년 대전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난’이었다. 그 뒤 이 지역은 몽고의 침략을 받았으며, 공민왕 때부터는 왜구의 약탈로 큰 피해를 입었다. 고려조에는 신라에 이어 불교가 더욱 융성했는데, 대전지방 부근에는 보문사(普門寺)를 비롯한 많은 사찰이 있었다. 지금의 대사동(大寺洞:한절골)은 큰 절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까지도 대전지역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유성구 상대동 일대와 대덕구 법동 일대에 대한 문화재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마을, 건물, 도로 등의 유구를 통해 고려시대 대전의 위상 및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에 근접해 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