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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복지

  • 제목 적폐청산 민주화성지 3·8의거둔지미공원입니다!
  • 담당부서 자치분권과
  • 작성일 2019-02-01

3·8 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그 의미를 새기고 널리 알리고자 둔지미공원을 3·8의거둔지미공원으로 개칭했습니다.

3·8의거둔지미공원
[3·8의거둔지미공원]


민주주의 선봉 대전의 자랑 3·8 민주의거

1960년 초, 부정부패로 점철된 이승만 정권은 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유지가 어렵게 되자 대규모 부정선거를 획책합니다.

이 같은 소문은 곧 전국으로 퍼져갔고, 첫 들불은 2월 28일 대구에서 일어났는데요.

1960년 2월 28일 반정부 가두행진을 벌이는 대구 학생들
[1960년 2월 28일 반정부 가두행진을 벌이는 대구지역 고등학생]


당시 학생들의 야당 선거유세 참가를 막기 위해 휴일에도 등교령이 내리자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었습니다.

하지만 경찰 진압으로 저항의 불길이 곧 사그라졌는데요.

이에 3월 8일 대전에서 대전고 학생을 중심으로 고등학생들이 모여 부정선거 모의를 규탄하는 가두시위를 벌이며 꺼져가는 민주화의 불씨를 되살렸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과 무차별 연행으로 도심 일원이 아수라장이 됐고, 주요 학생이 검거되면서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는데요. 그러나 이틀 후 10일 연행된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더 많은 학생과 시민까지 합세,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며 격렬한 투쟁으로 확대됐습니다.

1960년 3월 8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고등학생을 구타하는 경찰
[1960년 3월 8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고등학생을 구타하는 경찰]


이 같은 활동은 선거당일인 3월 15일 마산투쟁으로 이어졌고요. 당시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경찰 최루탄에 피격돼 사망, 유기된 시신이 발견되면서 전국적인 정권타도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3월 15일 부정선거 반대집회 때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보도된 신문
[3월 15일 부정선거 반대집회 때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보도된 신문]


그리고 4월 19일 경찰의 무차별 발표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나왔지만 국민이 이에 굴하지 않고 초등학생까지 참가하는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냈습니다.

계엄령에 따라 출동했으나 발포명령을 거부하고 시민 편에 선 국군 전차부대
[계엄령에 따라 출동했으나 발포명령을 거부하고 시민 편에 선 국군 전차부대]


대전시는 4·19 혁명에 묻혀 알려지지 않았던 3·8 민주의거를 널리 알리고 그 뜻을 새기기 위해 국가기념일 지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끝에 지난해 11월 결실을 맺었는데요.

지난해 11월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을 찾아가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촉구 서명부를 전달한 허태정 대전시장
[지난해 11월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을 찾아가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촉구 서명부를 전달한 허태정 대전시장]


이와 함께 3·8 민주의거 기념탑이 있는 둔지미공원 명칭 변경을 추진, 대전시지명위원회에서 ‘3·8민주의거둔지미공원’에 대한 심의를 거쳐 ‘3·8의거둔지미공원’으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대전시는 오는 3월 8일 정부행사로 3·8 민주의거 기념식을 개최하는 한편 추후 기념관 건립 등도 추진할 방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시 자치분권과(042-270-0551)로 문의하세요.

공공누리 제3유형

대전광역시가 창작한 "적폐청산 민주화성지 3·8의거둔지미공원입니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궁금하신 사항은 대전시 콜센터 "042 - 120"으로 문의주시면 친절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