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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DAEJEON MUSEUM OF ART

지난전시

기획전시 대전미술 100년, 미래의 시작
  • 전시기간 2018-11-16 ~ 2019-01-20
  • 부문 회화, 설치 外
  • 작품수 105점
  • 관람료 어른 500원, 어린이 · 청소년 300원 등
  • 출품작가 故 강환섭, 故 김수평, 김홍주, 故 남철, 이건용, 故 이종수, 故 윤영자, 정해조, 조평휘, 故 한정수
  • 전시장소 1전시실,2전시실,3전시실
  • 주최 및 후원 대전시립미술관
  • 전시문의 042-270-120
  • 기획의도
    <대전미술 100년, 미래의 시작>은 대전시립미술관 개관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서 1970·80년대 대전현대미술의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10명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대전미술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한국근대의 시대적인 격동기를 겪으면서 척박한 한국화단을 부흥시키기 위해 기성세대의 낡은 방식과 양식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 속에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한 선구자들이다.
    70·80년대 대전현대미술이 태동하기까지는 대전미술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운 스승과 같은 강환섭, 김수평, 김홍주, 남철, 윤영자, 이건용, 이종수, 정해조, 조평휘, 한정수 등 원로·작고작가의 노력 없이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작가들은 1970년대 초부터 대전에 미술대학이 설립되던 시기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술대학의 기틀을 마련하고 후학을 육성하며 대전미술의 초석을 다진 작가들이다.
  • 전시내용
    최근 국내외 현대미술계에서 독특한 대전미술을 주목하고 있다. 그 것은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2,3세대 작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중에서 많이 알려진 대전미술의 경향은 독특한 물성을 다루는 개념의 깊이와 오랜 시간 작품을 제작하는 노동집약적인 작업태도, 신체를 다루는 행위예술,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특징들이 있다.
    이 경향들은 한국현대미술의 경향에서 영향을 받기 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한 ‘씨앗을 뿌린,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스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대전미술 100년의 역사 속에 대전현대미술의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들로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작가들이다.
    이렇게 대전미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문화키워드로 사람과 예술 사이에 이어지는 순수한 교감 속에 가슴을 울리는 대전미술의 숨결을 10명의 원로·작고작가들과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작가정보
    강환섭은 1927년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제대 후 서울대학교 미술대 학부설 중등교원 양성소 회화과에 입학했다. 1954년 에 학생신분으로 국전에 입선하였고 1960년 국립중 앙공보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 작하였다. 이후 유화작품과 판화작품을 병행하며 실 험적인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특히 한국의 향 토적인 정서, 감성 또는 혼을 담은 작품들로 잘 알려 져 있다. 1962년 미군 오산공군기지의 초청으로 박수 근과 함께 초대전에 참여하였으며 두꺼운 종이를 오려 서 찍는 지판화가 인기를 끌며 주로 문자그림을 선보 였다. 이 시기의 작품은 한자의 표현을 벗어나 한글화 된 글자모형(graphic art)을 도입하여 한글의 아름다 운 조형미를 추구한 것으로, 종이원판에 느껴지는 투 박한 질감과 판화에서만 볼 수 있는 유연한 곡선들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1963년 한국미술협회 판화부문에서 장려상을 수 상한 후,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주한 미 8군 사령부 와 서울 미국인고등학교,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미술지 도를 하였다. 또한 미군방송 AFKN에서 판화 및 미술 강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였으며 1961년에는 주한 미 8 군사령부 초청으로 미 8군 크래프트 숍에서 전시를 가 졌다. 1968년 아르헨티나 국제판화비엔날레를 비롯 하여 국내외 80여회의 기획전에 참여하였으며, 2000 년 대전으로 거처를 옮긴 후 작품 활동에 매진하며 많 은 작품을 남겼다.

    김수평은 1942년 대구시 대봉동에서 출생, 196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970년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 였으며, 같은 해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71년 청주사범대 학(現 서원대학교) 미술교육과 전임강사 및 조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74년 숭전대학교(現 한남대학교) 미술교육학 과장으로 재직하였다.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추상의 기원으 로 회귀하고, ‘빛의 숭고한 표현’, ‘조화로운 세계의 구조’로서 정립되기에 이른다. 특별히 그는 동양철학과 불교적인 정신을 자연스럽게 기독교신앙과 결합, 종교적 세계관을 빛으로 승화하였다. 그의 작업에 있어서 빛은 구조적인 면 에서 필수적인 형식적 요소일 뿐 아니라, 공간, 면, 색채, 명암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항상 평화로운 세계’로서의 상 징으로 알려져 있다.
    김수평은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독일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 미술대학, 1982년부터 1983년까지 기센 (Giessen)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하였다. 1984년 오스트리아 빈(Wien)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1985 년 오스트리아 현대미술관 객원연구원(미술관 정책담당)으로 재직하다가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부교수로 부임하며 귀국하였다. 이후 <카셀 도큐멘타의 어제와 오늘> 강연, 『조형의 원리』출간 등 대전미술발전을 위해 활발한 활동 을 전개하였고, 1989년 갑작스런 병세 악화로 영면하였다. 그는 서울과 도쿄, 브라운슈바이크, 기센, 빈에서 개인전 을 가졌으며 마닐라, 뉴욕, 시애틀, 빈, 마드리드 등의 국제전에도 다수 참가하였다.

    김홍주는 1945년 충청북도 회인에서 출생, 청주사범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6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 였다. 1970년대 초, 당시 전위적인 개념미술을 표방한 ST 그룹 활동을 시작으로 주류미술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 적인 회화세계를 탐구하였다.
    그는 1970년 중반부터 경대, 창문, 거울 테 등에 자화상과 인물 들을 극사실적으로 그리며 개념미술의 관념적인 유희에서 탈피 하려는 시도를 이어간다. 그리고 1990년대 이래 회화의 2차원 적인 평면성, 그리고 이미지와 여백의 관계를 치열하게 탐구하 며, 미세한 세필로 무한 반복하며 거대한 꽃을 그리는 독특한 자 신만의 회화론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마치 점묘법과 같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점을 찍는 이러한 단순반복적인 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을 화면에 그대로 옮겨 놓는 듯한 물화(物化) 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김홍주는 1981년 목원대학교 미술대학에 재직하면서 일상적인 경험을 낯선 풍경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논, 밭, 산, 지도, 문자, 꽃 등을 주제로 다양한 대작(大作)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오랜 시간동안 점을 찍는 인고(忍苦)의 시간만큼 이나 ‘그리기’라는 회화의 근원적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 홍주는 1978년 ‘한국일보사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 프론티어 상’, 1980년 ‘까뉴 국제 회화제 특별상’, 2005년 ‘제 6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남철은 1936년 대전 석교동에서 출생, 196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1978년 계명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 였다. 1979년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그리고 1981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대우를 거쳐 1982년 충남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1985년 미국 노스 웨스턴 미시건주립대학교 초청으로 ‘한국의 현대미술과 미국의 현대미술 비교연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그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자연 혹은 문명과의 만남, 인간 자신의 생성과 소멸의 문제, 그리고 인간과 우 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기하적인 추상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이 시기 특별히 공간과 덩어리, 균형과 변화, 밀집과 확산, 거칢과 부드러움, 어둠과 밝음 등 대조적인 현상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옮겨 놓는 작업을 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남철은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평소 유난히 라디오, 무전기를 좋아했던 남철은 라디오 내부의 콘덴서, 저항, 주파수, 변조기 등 형형색색의 각종 부속품들의 다양한 배열을 보며 또 다른 조형미를 발 견하게 된다. 이 기하학적인 요소가 합쳐져 기조적인 구 성을 이루고 있으며 ‘수직, 수평, 원으로 이루어낸 질서 와 리듬’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석주(石州) 윤영자는 1924년 서울 출생으로, 1947년 조각가 윤효중, 윤경렬을 사사하고 홍익대학교 미술학 부가 창설된 해인 1949년 입학하였다. 이후 1949년 제 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시작으로 1991년 제 30회 차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1955년에는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3 년부터 1989년까지 목원대학교 미술학부에서 교수직 을 지냈고, 한국여류조각회, 한국기독교 미술인협회, 홍익조각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윤영자는 전통적인 석조, 목조, 철조 등의 매체를 두루 섭렵하면서 여성의 인체와 모성을 모티브로 삼은 부드 럽고 유기적인 여성 특유의 조형미를 확장, ‘힘과 정감 의 조화’를 추구하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특별히 그의 작업은 형태를 단순화시키면서 보다 본질적인 내재적 생명성과 율동성을 강조하는 추상형식을 취한다.
    해방 후 제 1세대 작가라 할 수 있는 윤영자는 기존 한 국미술화단의 사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적 작품을 제작한 작가로 한국근대조각의 선구자적인 여 성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1964년 행주산성의 <권율장군 행주대첩비>, 1968년 남산도서관의 <다산 정약용> 동상, 진천의 <김유신 장군> 동상 등 많은 조 각 작품과 기념비를 남겼다.

    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에서 출생하여 196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1982년 계명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 을 졸업하였다. 이후 군산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현재 군산을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건용은 1969년에 결성된 ST그룹에서 현대미술의 이론적 탐구와 실천적인 미술현장을 긴밀히 연결하고자 노력하 였다. 또한 AG그룹에 참여하며 한국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개념미술, 행위미술, 설치작업 등 다양한 실험미술을 전 개하였다. 40년여 년간 이어진 그의 전위적 작업은 사실상 한국현대미술의 다양성확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중 < 신체드로잉> 연작은 전통적인 회화론을 거부하며 신체의 제한된 행위 속에 배태된 독특한 회화 영역을 개척한 대표 적 작품이다.
    특별히 그는 1978년 목원대학교에 재직하며 후학들과 밤을 새며 치열한 연구를 이어갔고,이는 대전실험미술의 새 로운 지평을 열게 된 전위적인 ‘78세대’의 결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건용은 1979년《리스본 국제드로 잉전 79》에서 대상을 수상하였고, 최근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는 현지에서 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종수는 1935년 대전에서 출생하여,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 입학하였다. 그 후 여주, 이천, 광 주 등지의 도자기공장에서 일하였고, 1960년 갑동가마(現 대전 유성 소재)에 기거하며 작업, 국전 및 단체전에 작품 을 출품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64년부터 1975년까지 대전실업초급대학 생활미술과 교수, 1976년부터 1979년까 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1979년에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교수직을 뒤로 한 그는, 대전 대덕구 갑천변 신대리에 너와집 형태의 작업실을 짓고 여러 지역의 흙을 공수하여 전통적 인 수비(水飛)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겨울 열매>는 이 시기 본인 가마에서 첫 불을 지펴 구워낸 첫 작품이 다. 이후 <겨울 열매>, <마음의 향(鄕)>, <잔설의 여운> 시리즈 등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이들은 자연을 그대로 닮은 한국예술이 지닌 고유한 미의식과 당대의 시대적 미감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도자를 ‘불의 예술’이며 ‘기 다림의 미학’이라 언급하는 작가는 흙, 물, 바람, 불 등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른, 우리 시대에 다시없는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을 고 루 갖춘 도예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종수는 1969년 대전 목척교 난간설계도를 작 성, 고안하여 ‘충청남도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64년 대전교구 대흥동성당 성모상 좌대제작으 로 대전천주교회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또한 대 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의 특선수상 외에도 동일 전람회에서 15회 입상하였으며, 2000년 ‘제5회 한국카톨릭미술상 본상’을 수상, 2008년 ‘대한민 국 보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하였다.

    정해조는 1945년 충청북도 옥천에서 출생하여 197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에서 목칠공예를 전공하였다. 이 후 1981년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거쳐 1990년 일본 가나자와 미술공예대학 칠예(漆藝) 공예과정을 수학, 2006 년 베트남 호치민 미술대학 칠화(漆畵)최고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는 옻나무 수액을 정제하여 생칠, 흑칠, 투명칠, 색칠의 제작단계를 거치며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의 제작과정은, 먼저 형태를 디자인하고 스티로폼으로 성형, 그 위에 삼베를 호칠로 여러겹 발라 태(胎)를 만들고 옻칠을 하고 마지 막으로 광을 내는 과정이다. 정해조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에서 만들어진 원시조형과 옻칠로 빚어낸 천연의 광물효 과를 표현하는 한편, 촉감이 부드럽고 특유의 광택과 우아하고 미려한 빛깔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운 극치를 나타내 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정해조는 1994년 배재대학교 칠(漆) 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2010년 ‘홍조근정훈장’, 2015년 ‘옥관문화훈장’을 수 여하였다. 2009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크래프트 쇼》, 2010년 중국 호북미술관에서 주최한 《호북국제칠예 3 년》展과 프랑스 《메종 오브제 2010 가을》展에 참여하였다. 현재 배재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며 옻칠 작가로 활 발히 활동하고 있다.

    운산(雲山) 조평휘는 1932년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전쟁을 피해 인천으로 내려왔다. 이후 서울대학교 중등교원양 성소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청전(靑田) 이상범과 운보(雲甫) 김기창에게 동양화를 배웠다. 졸업 후 1976 년 목원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대전으로 거처를 옮긴 후, 그의 작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1950-1960년대 의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미술 모색시기, 1970-1980년대 실험적 작업을 전개했던 시기에서 실경위주의 수묵화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는 지점이다. 작가는 이 시기 끊임없는 사생을 통해 한국 수묵화의 새로운 재해석을 시도하며,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수묵을 모색한다. 관념적인 필묵은 사라지고 사생을 통해 화면을 구성하면서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경수묵화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조평휘는 대전지역을 넘어서 한국화단의 많은 다음세대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1999년 ‘국민훈장 동 백상’을 비롯하여 2001년 ‘제 2회 겸재미술상’을 수상하였으며, 2001년에서 2005년까지 운보미술관 초대관장을 역 임, 현재 목원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정수는 1958년 서울에서 출생, 198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프랑스, 영국, 그리스, 스위스, 이태리 등 의 미술관을 순례한 후 돌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별히 1988년 관훈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 로 작가는 자신만의 수목회화를 그리게 된다. 계명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영남대학교, 한성대학교에서 강의하며 후 학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던 그는, 1992년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전임강사를 역임하며 유성구 안산동 마을회관 2층에 작업실을 마련, 대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며 발견한 풀, 돌, 씨앗, 달팽이 등의 자 연적 소재를 화폭에 담으며 ‘화훼연습’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수묵기법에 몰두하였다.
    한지에 어우러지는 목탄의 호흡과 율동, 뒷면에서 배어나온 색채와 거친 선의 결합, 아무렇지도 않게 뿌려진 먹의 흔 적은 그의 작업에서 하나로 통합되어 자연의 모든 기와 맥을 포착한 약동하는 생명의 소리들로 가득찬다. 작가는 특 유의 청감(聽感)으로 자연의 소리, 음성, 박동을 감지하여 동양철학의 음(陰)과 양(陽)의 조화와 합일을 ‘화훼연습’이 라는 자신의 독특한 회화론을 통해 펼쳐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96년, 1년간 중국 사회과학원 초빙교수 로 재직하며 북경, 상해, 소주, 항주 등 중국을 돌며 전통수묵의 현장을 답사하였고, 이 때 쓴 미술기행이 귀국 후 도 서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1998년 돌연한 암 재발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