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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석관묘(石棺墓)낮은 구릉(丘陵)이 발달한 괴정동 한국통신 뒷산 밭에서 밭을 갈던 농부에 의해 발견된 석관묘유적이다. 1967년 7월에 밭을 갈던 중 쟁기에 돌이 걸려 방해가 되므로 이 돌들을제거하다가 지하에 묻힌 유물을 수습하게 되었다. 이 유물은 해방 후에 발견된 최대의 수확으로 손꼽힌다.유적은 남북방향으로 장축을 두고 있는데 남북 3.3m, 동서폭 2.8m 크기로 깊이 2.7m 가량 풍화된 화강암반을 파내려 가서 길이 2.2m, 폭 0.5m, 깊이 1m 크기의 석관구조를 만들었다. 바닥에는 돌을 깔지 않았고 뚜껑은 돌로 덮지 않았으므로 내부는 위에 채운 돌이 무너져 쌓여 있었는데 바닥에서 얇은 나무조각 썩은 흔적 이있는 것으로 보아 석실(石室) 내부에 간단한 목관(木棺)시설이 있었던 듯하다. 이와 같은 석관위에 빈 공간을 커다란 돌들로 채웠으며, 지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북쪽 끝에서 토기 2점이 발견되었으며 그로부터 남쪽에 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와 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및 동탁(銅鐸) 그리고 동경(銅鏡)과 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 등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남쪽 부분에서는 천하석(天河石)으로 만든 식옥(飾玉)과 작은 옥들이 흩어져 있었고, 중간 허리 부분에서는 동검(銅劍) 1점과 마제석촉(磨製石鏃)이 나왔다. 동검은 자루가 남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식옥은 1쌍으로 나와 귀걸이 장식으로 짐작된다. 즉 주인공은 남침(南枕)한 매장방식이다. 이 유적은 한국식동검(韓國式銅劍)이 나는 유적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는 요녕지방(遼寧地方)과 문화교류가 있었던 사실을 말해주는 자료이다. 검파형동기에서 보이는 섬세한 기하학적 무늬는 예산(禮山) · 아산(牙山)지방의 석관묘 출토유물과 더불어 충청지방에서 발달한 청동기 주조기술(鑄造技術)의 높은 수준을 말해주며, 이 지역이 평양(平壤) · 영암(靈巖) · 경주(慶州)지방과 아울러 한반도 청동기 문화 중심지 중의 하나였음을 말해준다.한국식 동검 1점 : 동검 가운데 지나고 있는 등대의 마연부분이 중간의 마디 이하로 내려오지 않은 형식으로 한반도에서 제작된 초기에 속하는 고식(古式)검이다. 길이 32.4cm.동경 2점 : 뒷면에 거친 무늬를 가진 고식(古式)의 거울틀이다. 한점은 평행사선문(平行斜線文)으로 메운 삼각형을 전면에 불규칙하게 배열하였다. 원래 깨진 것을 부장(副葬)하였다. 직경 11.3cm, 부여 연화리(蓮花里)와 소록도(小鹿島)에서 같은 형식의 거울이 출토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원권대(圓圈帶)로 내외(內外)를 구획하여 형행사선문을 채운 삼각형을 배열하였는데 내 · 외구(外區)의 무늬구성이 다르고 전자에 비하여 훨씬 정교하다. 직경 8.0cm.검파형동기 3점 : 대나무마디 2절(節)을 쪼갠 형태이다. 중간에 마디가 있어 상하 2구로 구분되는데, 각 구마다 주위 윤곽을 따라 네모난 세선문대(細線文帶)를 이중으로 돌려서 구획하였다. 한 가운데는 새끼줄을 꼬아 만든 형태의 둥근 꼬리를 하나씩 매달아 두었다. 주술적(呪術的)인 종교의식에 사용된 장신구의 일종으로, 주조기술이 매우 우수하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대단히 정교하다. 지금까지는 아산 남성리(南城里), 예산(禮山) 동서리(東西里) 등 충남지방에만 발견되는 특이한 형식의 청동기이다. 길이 23.0cm 내외.방패형동기 1점 : 방패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청동기로 윗부분은 각(角)이 지고 아래쪽은 원형으로 마무리되었다. 가운데 세로와 전체 윤곽을 따라 좁은 격자문대(格子文帶)가 있으며, 상부(上部)에는 네 개의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끈으로 매달아 오랫동안 사용하였으므로 닳아빠진 흔적이 있다. 대전에서 나온 것으로 전하는 농경(農耕)무늬가 새겨진 청동기와 형태가 같다.원개형동기 1점 : 한 쪽이 오목한 접시모양이며, 둥글게 나온 면 한 쪽에 치우쳐서 고리를 붙였다. 이런 형태의 청동기는 요녕지방의 청동기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예산 동서리, 대구(大邱) 평리동(坪里洞)에서도 나온 바 있다. 직경 20.6cm.동탁 2점 : 윗부분에 반원형의 고리가 있는 방울이다. 혀는 없으나 매달기 위한 구멍이 나 있고, 탁신(鐸身)의 단면은 타원형이다. 길이 11.4cm, 11.2cm.마제석촉 3점 : 꼬다리가 없는 평면 3각형의 석촉인데 촉신(鏃身)이 매우 얇으며 단면이 편6각형이다. 청동기와 함께 오랫동안 반출되는 유물로서 의기적(儀器的) 성격이 강하다. 길이 6.8cm∼7.4cm, 폭 2.0cm.천하석제식옥 2점 : 반원형의 옥의 가운데를 둥글게 파낸 것으로 한쪽에 구멍을 뚫었다. 귀걸이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부여 연화리를 비롯한 석관묘유적에서 청동기와 같이 출토한다. 길이 3.4cm, 3.2cm.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 1점 : 바닥이 납작하고 몸체가 둥글며 길다란 목을 가졌다. 고운 흙으로 빛어 두께가 얇으며 토기의 바깥을 마연한 부장용(副葬用) 토기이다. 석관묘에서 자주 나타나며 후기에는 초기철기시대의 토광묘(土壙墓)에서도 발견된다. 높이 22.0cm.점토대토기 1점 : 납작한 바닥에 거친 흙으로 투박하게 빚어 올렸으며 구연부(口緣部)에 점토의 테두리를 붙인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이다. 청동기와 장경호(長頸臺), 석촉(石鏃)과 함께 청동기들과 반출하는 토기이다. 높이 1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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