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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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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 권경채(權景采)
생몰년대 1866(고종 3) ~ 1938
출생지
출처
조회 4625 작성일 2008-04-22
첨부
상세정보 묘소 : 중구 무수동

한말의 학자. 공의 휘(諱)는 경채(景采)요, 자(字)는 운여(雲汝)이며, 호(號)는 회석(晦石)이다. 고조(高祖)는 휘(諱)가 상희(尙熺)요, 태창수(太倉守)를 역임하였고,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추증(追贈)되었다. 증조(曾祖)는 감(堪)으로 이참(吏參)에 추증되었으며, 조(祖)는 용전(用銓)으로 진사(進士)로써 이참(吏參)에 추증(追贈)되었다. 고(考)는 영수(永秀)로 가의대부(嘉義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이였다. 1866년(고종3년) 4월 17일 무수동(無愁洞)에서 출생하였다.
공은 출생한 지 겨우 1년만에 부친이 하세(下世)하여, 종사(宗祀)가 극히 어려웠을 때 정부인(貞夫人) 진주(晉州) 강씨(姜氏)가 의연히 종통을 견지(堅持)하여 다행히 선영 음덕으로 점점 성장하게 되었다.

공의 품성은 천성(天性)이 인효(仁孝)하였고, 지성(至誠에 예(禮)로써 선조(先祖)를 봉사하는 것을 급선무로 하였다.
1932년 가을 아들인 용경(容敬)가 분의(奮義)로 인하여 일제(日帝) 헌병에 의해 전북(全北) 전주(全州)에 포박되어 끌려갈 때 공은 아들을 생각하며 시(詩)로써 탄식하면서 말하길


이 세상에 태어 낳아 너 어찌 타인(他人)에 묶여 끌려 갔는가?
아픈 마음 한결같아 눈물이 수건을 적시 누나.
추우면 갈옷(葛衣)에 몸은 항상 오그라드는데,
끼니때가 되면 먹는 밥이 목구멍을 메운다.
아비위해 강건하게 세월을 보내다고,
온가정이 온전하게 하느님께 비노나니.
대문에 의지하여 너를 보듯 편지를 보는데,
어느덧 어둠이 젖어 깨어보니 현실이더라


고 읊었는데, 자인 용두(容斗)는 그 시(詩)를 읽을 때마다 눈물을 금할 수 없다고 하였다.

공은 평소 벽에다가 주문공(朱文公)의 「경재잠(敬齋葴)」을 써놓고 항상 자손들을 훈계하면서 말하길 「성실하게 능히 일에 통달하고 분수 지키기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誠能事達 念念守分)」고 하였다고 한다.

배(配)는 청송(靑松) 심씨(沈氏)로써 재승(在昇)의 여이다. 1866년(고종 3년)에 태어나서 1894년(고종 31년)에 졸(卒)하였는데 향년 29세였다. 심씨(沈氏) 소생으로는 1녀가 있었다.

계비(繼妣)는 보성(寶城) 오씨(吳氏)로서 연익(淵益)의 여이다. 1874년(고종 11년) 12월 10일에 출생, 53년간 향수(享壽)하였으며, 이남일녀(二男一女)를 두었다. 장남(長男)이 용한(容漢)이고 차남(次男)은 용두(容斗) 혹은 용경(容敬)이였다.

《자료 : 安東權氏 參議公派 家乘 卷4, 大田市誌》
《權兌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