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주요메뉴 바로가기
왼쪽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합니다.

자료마당Data's room

1호독무덤

조선환여승람
구한말 이후까지 대전지방의 소식을 전해주는 사찬지리지

궁동유적3호 굴식돌방무덤

궁동유적3호
굴식돌방무덤

조선시대 대전지역은...

회덕현은 현재 동구와 대덕구, 중구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에 해당된다.
치소는 산성이 있는 계족산을 진산으로해서 자리잡았는데 현재 그 터만 남아 있다.
조선후기 지방지도에는 당시 관아배치도가 상세히 남아 있다.

진잠현은 현재 대전의 서남부 서구 지역에 해당되는데 진잠초교와 그 일대가 그 중심 치소에 해당된다. 현재 관아 건물의 일부로 생각되는 기성관(杞城館)이 남아 있다.

예전부터 대전은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의 편리가 있었다. 회덕을 통해서는 문의나 옥천 방향, 진잠을 통해서는 연산이나 진산 방향으로 갈 수 있었고, 또한 이와 함께 사람들의 왕래의 편의와 숙식을 위해서 고려말이래 많은 역원(驛院)이 있었다.

회덕현내에는 정민역(貞民驛), 미륵원(彌勒院), 덕창원(德昌院), 총술원(寵述院) 등이 있었다. 이 중 미륵원은 굴파원(屈坡院)이라고도 하는데, 고려말이래 역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 원(院)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걸쳐 이 지방에 살던 회덕황씨가에서 운영하던 곳으로 여행객에게 숙식과 휴식처를 제공하였다.
이 곳에는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기문(記文)과 하륜(河崙)의 서(序)를 비롯해서 제현(諸賢)의 많은 시가 전해온다.

이같은 대전지역의 회덕현과 진잠현은 고종(高宗) 32년(1895)에 각각 회덕군(懷德郡)과 진잠군(鎭岑郡)으로 개명이 있었고, 그 뒤 여러 차례 군의 통합과정을 거쳐 1989년에 오늘날과 같은 대전의 영역이 형성되었다.